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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 경제개발 도와주고 유전 확보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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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치열한 자원 확보 전쟁의 시대다.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 한국이 찾을 수 있는 획기적 방안은 무엇일까'를 놓고 에너지 전문가들이 좌담을 했다. 왼쪽부터 김태유 서울대 교수, 이원걸 산업자원부 차관, 김희집 액센추어 부사장. 최승식 기자

중국의 자원 싹쓸이 바람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수조원 투자는 예사다. 올 들어 사우디아라비아와 52억 달러(약 5조원), 나이지리아와는 40억 달러(3조8000억원) 유전 개발 계약을 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자원 외교를 위해 지구를 세 바퀴나 돌았다. 중국에 질세라 미국.유럽연합(EU).일본.인도도 해외 유전과 광산을 착착 인수하고 있다. 여기에 자원민족주의가 전 세계로 번져 자원 보유국들은 쉽사리 광산 등을 내주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니 한국이 해외에서 자원을 확보하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과연 한국에 돌파구는 없는가.

정부에서 자원 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이원걸 산업자원부 제2차관,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김태유 교수, 글로벌 경영컨설팅그룹인 액센추어에서 에너지.자원을 담당하는 김희집 부사장이 만나 '한국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원걸 차관=유가가 배럴당 75달러를 오르내린다. 국제에너지연구소는 이보다 더 오르리란 전망을 자꾸 내놓고 있다.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 우리에겐 큰 문제다. 해외 유전을 확보해 우리가 산유국이 돼야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그래서 정부도 많은 노력을 한다. 하지만 자원 개발에 온통 국력을 집중하는 중국.인도 등에 비해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김희집 부사장=우리는 철강.화학 등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산업이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경제활동 전체가 마비된다. 그런데 해외 자원 개발 투자는 미흡하다. 미국 석유회사 엑손모빌은 지난해 유전 개발에 145억 달러(약 14조원)를 쏟아 부었다. 우리나라의 투자는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1조원에도 못 미쳤다. 지금 자원 개발을 게을리하면 우리의 다음 세대가 고통을 겪는다.

▶김태유 교수=일부에선 에너지 절약을 외친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 중공업이나 화학 산업이 에너지를 절약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답은 해외 자원 개발이다. 여기에 더 많은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이 차관='자원 개발 펀드' 1호가 11월에 나온다. 해외 유전.광산 개발에 투자하고 수익을 분배하는 것이다. 2000억원을 모으는 것이 목표다. 투자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3억원 이내 투자자에 대해서는 수익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 혜택도 줬다.

▶김 부사장=2000억원은 큰 규모가 아니다. 유전 탐사.개발 계약을 할 때 보통 자원 보유국에 '사이닝 보너스'라는 것을 준다. 인수 대금 외에 얹어 주는 일종의 웃돈이다. 얼마 전 중국은 원유 11억 배럴이 묻힌 것으로 예상되는 광구 탐사권을 계약하면서 사이닝 보너스로 약 1조원을 줬다. 인수 대금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웃돈인 사이닝 보너스보다 훨씬 크리란 것은 자명하다.

▶김 교수=펀드에 더 큰 혜택을 줘서라도 부동산 투기 등에 몰리는 수백조원의 부동자금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래야 중국이나 거대 기업과 경쟁해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게다가 부동산 투기 자금이 빠져나가면 집값도 안정되고, 또 해외 투자를 위해 달러를 많이 사면 환율도 안정된다. 1석3조다.

▶이 차관=우리의 강점인 플랜트 산업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올해 우리는 나이지리아와 유전 탐사 계약을 했다. 발전소를 지어 주는 대가로 탐사권을 얻었다. 전기가 부족한 나이지리아는 우리에게 발전소를 지어 달라고 했고, 우리는 유전을 달라고 했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계약을 한 것이다. 아프리카 자원 보유국과 협상을 할 때 이런 모델을 활용하려고 한다.

▶김 부사장=좋은 전략이다. 플랜트 산업에 있어 한국은 중국.인도가 따라오지 못할 만큼 기술이 뛰어나다. 게다가 플랜트 수출은 제조업보다 수익성이 훨씬 높다. 결국 플랜트와 자원 개발을 연계하는 것이 돈과 자원을 함께 확보하는 길인 셈이다. 지난해 플랜트 수출이 16조원이었는데, 분석해 보니 자원 개발과 연계한다면 한 해 50조원 플랜트 수출도 가능할 것으로 예측됐다.

▶김 교수=자원 보유국은 대부분 개발도상국이다. 전력.도로.통신 인프라 등이 필요하다. 인프라를 지어 주고 대신 유전.광산 지분을 받는 '패키지 딜'이 먹힌다. 패키지 딜에는 자원민족주의도 걸림돌이 되지 않으리라고 본다. 자원민족주의라는 게 자원에서 최대한 돈을 벌어 자국 경제 발전을 위한 인프라 건설에 투자하겠다는 것 아닌가.

▶이 차관=국내 플랜트 업체들도 적극적이다. 산업자원부에 찾아와 자원 개발 공동 진출 방법을 묻는 업체가 많다. 석유나 광업 회사들만 해외 자원 개발에 관심을 쏟던 예전과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이렇게 많은 기업이 관심을 가진 덕에 올해 우리나라의 해외 자원 개발 투자는 지난해의 세 배인 3조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교수=땅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아내는 탐사기술력을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탐사기술이 앞서 있으면, 남들이 비싼 값으로 인수해 탐사하다 포기한 유전.광산을 헐값에 인수해 자원을 찾아낼 수 있다.

▶이 차관=정부도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석유 아카데미'(가칭)를 구상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나 SK㈜의 전문인력들이 강의를 하면서 실무형 기술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예산도 확보했다. 어떻게 운영할지 방법을 찾고 있다. 대학 안에 둘지, 아니면 석유공사나 SK㈜ 같은 기업 안에 설치해 운영을 맡길지 하는 것 등이다.

▶김 교수=해외 자원을 확보하려면 자원 보유국에 폭넓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정보를 세세히 파악해야 한다. 자원 보유국 대사관에 '자원관'을 두고 이런 일을 맡겼으면 한다. 또 외무고시 말고 산업.자원 분야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뽑는 '외무기술고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김 부사장=국내 기업들 간에 정보 교류와 네트워크 공유도 필요하다. 국내 조선회사들은 산유국의 국영 석유회사 안에 인적 네트워크가 많다. 우리 조선 산업이 발달하다 보니 산유국의 국영 석유회사 등이 시추 장비 등을 많이 발주해 생긴 결과다. 하지만 거기서 그친다. 석유공사 등은 따로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서로 아는 사람을 소개해 주는 식으로 네트워크를 공유하면 더욱 쉽게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차관=자원외교는 2004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내년부터는 해외 자원 개발 재원도 확충된다. 휘발유 등 석유 제품에 붙는 목적세인 교통세가 내년부터 '교통 에너지 환경세'로 바뀌면서 일부를 해외 자원 개발에 쓰기로 했다. 교통세는 한 해 11조원이 걷히니 일부만 끌어와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자원외교와 확충된 재원을 바탕으로 해외 자원개발에서 5년쯤 뒤부터 좋은 성과가 나올 것이다.

정리=권혁주.심재우 기자<woongjoo@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 특별취재팀 : 아프리카=권혁주 기자, 중남미=서경호 기자, 유럽.중앙아시아=심재우 기자,

캐나다=임미진 기자(이상 경제부문),

호주=조민근 기자(국제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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