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등 피해액 1조4700억원…'전국 최대 대포통장 거래 조직' 붙잡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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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법인 설립 대포통장 320개 개설 

강원청 보이스피싱수사대가 압수한 대포통장 및 대포폰 [사진 강원경찰청]

강원청 보이스피싱수사대가 압수한 대포통장 및 대포폰 [사진 강원경찰청]

강원경찰청 보이스피싱수사대는 대포통장 유통 범죄단체 총책 A씨 등 10명을 구속하고 8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8일 밝혔다. 이들은 2015년부터 6년간 해외보이스피싱 조직, 사이버도박 조직 등 범죄조직에 대포통장을 팔아 72억원 상당의 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 등은 유령법인 150여개를 설립하고 대포통장 320개를 개설한 것으로 확인됐다. 불법유통된 대포통장에 입금된 피해액만 1조4700억원에 이른다. 경찰은 "단일조직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라고 설명했다. 피해 유형별로는 보이스피싱 107개 계좌 6856억원, 사이버도박 119개 계좌 7377억원, 인터넷물품사기 9개 계좌 579억원 등이다.

행동강령 ‘대포폰으로만 연락해라’

이들이 범죄에 유령법인을 이용한 건 법인 명의로 다수의 계좌를 개설할 수 있기 때문으로 조사됐다. 유한회사는 자본금 납입 증명을 하지 않아도 쉽게 법인 설립이 가능하고 법인 명의로 다수의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여기에 개인계좌와 달리 범행에 사용된 계좌만 지급정지되기 때문에 다른 계좌는 계속 사용이 가능하다.

이들은 조직 내 행동강령도 만들었다. 행동강령은 ‘각자 지급된 대포폰으로만 연락해라’ ‘범행 사무실에 들어갈 때는 차를 멀리 주차하고 주위를 살펴라’ ‘경찰 검거 시 가상의 인물을 얘기하고 공범의 이름은 말하지 마라’ 등이다.

실제 수사기관 추적을 피하기 위해 총책 등 조직원 25명이 쓴 대포폰은 516대에 이른다. 이들은 유령법인을 개설하기 위해 57명에게 1인당 300만원씩을 주고 명의를 사 유령법인을 설립했다. 조직원들은 전국 은행을 돌며 해당 유령법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개설해 보이스피싱 조직 등 범죄조직에 통장 1개당 월 120만원을 받고 판매했다.

통장 1개당 월 120만원 받고 판매 

강원청 보이스피싱수사대가 불법 대포통장 유통 거래 조직으로부터 압수한 차량 [사진 강원경찰청]

강원청 보이스피싱수사대가 불법 대포통장 유통 거래 조직으로부터 압수한 차량 [사진 강원경찰청]

보이스피싱 범행으로 계좌가 지급정지되면 범행조직의 연락을 받고 은행을 통해 직접 피해자와 연락해 피해금을 변제했다. 이후 지급정지를 해제해 계속 사용하거나 새로운 계좌를 제공하는 등 대포통장을 판 뒤에도 지속해서 관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총책 A씨는 조직원들에게도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일반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 행세를 하며 조직을 관리했다. 또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교도소에 수감된 공범 변호사 비용을 대납하고, 생활비를 주는 등 조직원을 철저하게 관리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박근호 보이스피싱수사대장은 “보이스피싱 등 범죄조직에 필수적으로 활용되는 대포통장과 대포폰 등 대포물건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 나가겠다”며 “현재 대포통장 공급처로 확인된 필리핀 보이스피싱 조직과 사이버도박 조직을 추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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