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데탕트 속 「동병상련」|김일성 왜 갑자기 북경에 갔을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북한 김일성의 돌연한 중국 방문은 미소간의 데탕트무드, 동구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탈 사회주의의 급격한 변화, 소련의 「2개의 한국 인정」을 포함한 대 한반도 정책 적극 표명 등 최근 환경 변화 가운데 북한이 처해온 국제적 고립 상태에서 택할 수 있는 「예상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제13기 중앙 위원회 제5회 전체 회의가 6일부터 열리는 시점에서 전격적으로 방문했다는 점에서 북한측에 긴급 과제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들어 헝가리에 이은 폴란드의 한국과 국교 수립에 이어 유고슬라비아·불가리아, 그리고 소련까지도 빠르면 연내 또는 내년 봄까지 국교 수립이 예상되고 있는 만큼 북한은 중국과 함께 사회주의권의 「이상 기류」에 대한 원칙적인 협의를 모색할 필요가 있어왔음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소련이 최근 들어 공식·비공식 기관의 입을 빌려 『한국이 유엔에 단독으로 가입하더라도 반대하지 않겠다』고 표명한 사실은 북한에 있어 지극히 중대한 사태 변화다.
「2개의 한국」을 인정함으로써 대 한반도 정책의 1백80도 전환을 표명한 소련의 태도에 북한은 이번 방문을 통해 중국과 함께 동병상련의 공동 대처 방안을 모색하려 한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1개의 중국, 1개의 대만』을 인정하지 않는 측면에서 『2개의 조선』을 반대하는 북한의 경우와 일치한다.
북한의 김일성은 지금까지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펴면서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태도를 취해왔지만 이같은 상황 변화 속에서 『보다 확실한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중국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으로 일본 내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 소련으로부터 예전과 같은 전폭적인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보고 한국의 유엔 단독 가입 시도시 안전 보장 이사회서 거부권 행사 등 결정적인 역할을 『현재 믿을 수 있는 우방』인 중국 측에 기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5중 전회가 시작되는 한편 리펑 (이붕) 중국 총리가 파키스탄·방글라데시·네팔 순방을 계획하고 있는 1주일을 앞둔 시점에서 이루어진 긴급 방문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여기서 김일성의 후계 문제, 북한에 대한 긴급 원조 등 양국간에 긴급한 협의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시거전 미 국무차관보의 북한 방문 바로 직후라는데서 모종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 측의 의사 전달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추측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므로 김일성의 중국 방문은 향후 한반도의 냉전 질서 재편과 관련하여 중국의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북한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경=방인철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