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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 아닌 중간부터 부쉈나···의문의 '광주 54번 버스' 비극

중앙일보

입력

17명의 사상자가 나온 광주광역시 건물 붕괴사고를 수사 중인 경찰이 왜 철거업체가 붕괴 위험성이 높은 건물 중간 부분부터 철거 작업을 선택했는지 의문을 밝힐 감리업체에 대한 소환조사도 못 한 것으로 확인됐다.

철거계획서 순서 무시하고 저층부터 해체 추정 #주민 “사고 전부터 지자체에 경고했는데 무시”

지난 9일 17명의 사상자를 낸 철거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 사고 발생 전 철거 현장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 공개됐다. 철거업체 작업자들이 건물을 층별로 철거하지 않고 한꺼번에 여러 층을 부수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해체계획서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음이 의심된다. 연합뉴스

지난 9일 17명의 사상자를 낸 철거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 사고 발생 전 철거 현장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 공개됐다. 철거업체 작업자들이 건물을 층별로 철거하지 않고 한꺼번에 여러 층을 부수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해체계획서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음이 의심된다. 연합뉴스

전문가들 “제대로 감리 안 한듯” 입 모아

10일 광주경찰청 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 9일 광주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 현장에서 붕괴한 5층 건물에 대한 철거 작업 감리업체에 대한 참고인 소환조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감리업체를 소환 조사하기 위해 계속 연락을 시도하고 있지만, 닿지 않아 조사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했다. 경찰은 사고 직후부터 현재까지 공사 현장 관계자와 재개발 사업 관계자 등 10명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는데 감리업체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감리업체는 철거계획서대로 공사가 진행되는지 관리·감독하고 안전점검까지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붕괴 건물 철거작업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비상주 감리로 계약됐고 사고 났을 때는 감리자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지난 9일 발생한 17명의 사상자를 낸 철거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 지난 1일 철거 업체가 해체계획서를 준수하지 않고 철거를 진행했음을 증명하는 사진이 나왔다. 사진 속에는 굴착기가 건물의 저층을 일부 부수고 있는 모습이 찍혔다. 연합뉴스

지난 9일 발생한 17명의 사상자를 낸 철거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 지난 1일 철거 업체가 해체계획서를 준수하지 않고 철거를 진행했음을 증명하는 사진이 나왔다. 사진 속에는 굴착기가 건물의 저층을 일부 부수고 있는 모습이 찍혔다. 연합뉴스

최명기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는 “건물 해체과정에서 해체순서와 구조적인 보강 등을 관리 감독하는 해체 감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건물 철거 붕괴사고 사례를 보면 상층의 일부를 철거한 뒤 곧바로 1층에 내려와 기둥이나 벽을 깨부수는 경우도 있다. 이러면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며 “해체계획서상 할 수 없는 방법이지만 공사를 빨리 끝내려고 1층을 먼저 해체하는 경우에 사고가 나기도 한다”고 했다.

10일 17명 사상자가 나온 광주 재건축 건물 붕괴사고 현장에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현장감식을 벌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0일 17명 사상자가 나온 광주 재건축 건물 붕괴사고 현장에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현장감식을 벌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상층부 아닌 중간층부터 철거 정황 왜? 

붕괴 건물 철거 공사 관할 지자체인 광주 동구청이 밝힌 해당 건물 철거계획서에 따르면 철거업체는 건물 5층 최상층부터 철거를 시작해 순차적으로 하향식 해체작업을 해야 한다. 중장비가 5층부터 3층까지 해체작업을 마친 뒤 1~2층 저층부로 내려오는 형태다.

중앙일보가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해당 건물 ‘건축물 해체허가신청서 및 해체계획서’을 보면 중장비가 건물 최고층 위로 닿을 수 있을 때까지 잔재물을 쌓고 철거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또 최고층부터 3층까지 건물 해체 뒤 1~2층 해체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붕괴 건물 인근 주민들의 증언과 현장 사진 등을 살펴보면 상층부가 아닌 건물 중간부터 철거작업이 진행된 정황이 확인되고 있다. 중간부터 해체된 탓에 건물 하층부가 상층부 하중을 못 이겨 도로를 향해 무너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 동구청도 감리업체가 현장을 관리하지 않는 상태에서 철거 업체가 규정을 어기고 하층부터 철거를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동구청 관계자는 “시공업체에서 상주 감리가 아니라고 하지만 위험했던 공정이고 관리·감독이 필요했다고 본다”면서 “법적으로 상주·비상주 감리 구분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9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 사업 공사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 소방당국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9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 사업 공사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 소방당국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경찰, 감리업체 등 압수수색 

광주 동구청도 감리업체와는 사고 당일 오후까지만 연락이 닿았고 현재는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다. 다만 경찰은 붕괴 건물 철거 작업 감리업체에 관련된 자료를 확보했다고 한다.

또 감리업체를 비롯해 현대산업개발 광주 현장사무소, 철거업체 2곳 등을 상대로 압수수색에 나섰다. 경찰은 학동 주택재개발 사업의 철거 관련 인허가와 재개발 사업 전반에 대한 확인 작업도 할 계획이다.

광주 동구청은 감리업체와 시공사를 고발할 방침이다. 동구청 관계자는 “원칙대로라면 사법기관 감식결과를 확인한 뒤 고발방침을 세워야 하지만, 시공사와 감리업체가 규정을 어긴 것으로 보고 사법당국에 이번 주 내로 고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건물이 붕괴되기 앞서 관할 지자체에 위험을 경고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인근 주민 A씨는“지난 2일쯤 철거를 앞둔 5층 건물에서 큰 돌덩이가 ‘쿵’ 소리를 내면서 떨어져 동구청에 알렸는데 사고가 날 때까지 안전조치는 없었다”고 말했다.

진창일·김지혜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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