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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에 ‘집 노랗게 칠해라’한 군수…인권위 “자유권 침해”

중앙일보

입력

국가인권위원회 본관.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 본관. 연합뉴스

지방의 한 군수가 군청 소속 계약직 공무원에게 주택의 지붕과 처마를 노란 색으로 칠하라고 권유한 것에 대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강요 행위와 인권침해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8일 인권위에 따르면 지방의 한 군청에서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A씨는 B군수가 자신에게 신축 주택의 지붕 등을 노랗게 칠하라고 한 것은 인권침해에 해당된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A씨는 지난 2019년 허가를 받아 2층 규모의 신축 주택을 건축했고, 지붕은 갈색 기와로 마감했다. 인권위는 이후 B군수가 A씨의 가족 및 동료 공무원 등을 통해서 지붕과 처마를 노랗게 칠할 것을 권유한 것으로 파악했다. 결국 A씨는 새로 지은 집의 지붕 등을 노랗게 칠했다.

이와 관련해 B군수는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직원부터 건축물 디자인 적용에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다는 건의가 있었다”며 “A씨 가족과 면담 중 동참을 권유한 바 있고, 당시 주택 분야 담당자에게 A씨 주택 도색 디자인 작업에 불편함이 없도록 적극 협조해 주라고 지시했다”고 해명했다.

또 “A씨가 주택 도색 작업에 부담감을 느낀다는 말을 했다는 보고를 받아 ‘개인이 희망하지 않으면 도색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시했다”며 “A씨 스스로 도색 작업을 마무리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는 고용의 불안정성과 위계질서가 뚜렷한 공무원 사회에서 A씨가 B군수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지 못하고, 권유에 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또 B군수의 지시를 받은 담당자가 A씨에게 ‘표면상으로는 협조를 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명령이며 그것이 조직 문화’라는 취지라고 말한 점을 지적하며 “당시 군청 직원인 A씨가 B군수의 권유를 거절할 수 없는 명령으로 수용하게끔 잘못된 조직문화를 강요했다”고 강조했다.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직원부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필요가 있었다는 B군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사회 통념상 개인 주택의 도색은 개인의 사생활 영역”이라며 “상하 지위 관계가 분명한 지방자치단체에서 하급직 직원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로, 자발적 동참을 격려하고자 하는 취지를 크게 벗어났다”고 짚었다.

이를 종합해 인권위는 “업무와 무관한 사적 영역의 주택에 대해 특정 색으로 도색할 것을 권유한 행위는 A씨의 의사에 반(反)하는 강요 행위”라며 “A씨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B군수에게 A씨의 의사에 따라 피해에 대한 원상회복 또는 손해배상 등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다.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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