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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ㆍ미 이산가족 상봉 띄우는 美...인도적 접근으로 '2011년 어게인'?

중앙일보

입력

바이든 행정부가 북ㆍ미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띄우기 시작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1년 북한 인권특사의 방북을 계기로 북ㆍ미 이산가족 상봉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던 경험을 되살려 대화의 물꼬를 터보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재미이산가족 상봉추진위원회가 2018년 11월 17일(현지시간) 개최한 '이산가족'(Devided Families) 다큐멘터리 시사회에서 이차희 사무총장이 북한에 남겨둔 가족들의 사진을 보는 장면. 연합뉴스

재미이산가족 상봉추진위원회가 2018년 11월 17일(현지시간) 개최한 '이산가족'(Devided Families) 다큐멘터리 시사회에서 이차희 사무총장이 북한에 남겨둔 가족들의 사진을 보는 장면. 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7일(현지시간) 미 하원 세출위 청문회에서 북ㆍ미 이산가족 상봉 문제에 대해 "사랑하는 가족이 떨어진 채로 생사도 모른다는 건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라며 "이 문제를 위해 확실히 노력하겠다고 약속한다"고 말했다. 앞서 미 국무부도 지난 3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미국은 북한에 가족을 두고 비극적으로 헤어진 한국계 미국인들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블링컨 국무 "가슴 찢어지는 일" #2011년 로버트 킹 인권 특사 방북 #상봉 문제 제안...北도 "긍정 검토" #김정일 사망하며 논의 완전히 중단 #김정은 시기 들어선 협의 전무

미 의회 차원의 논의도 활발하다. 지난 2월 그레이스 멩 민주당 하원 의원이, 4월에는 영 김 공화당 하원 의원과 브레드 셔먼 민주당 하원 의원이 각각 이산가족 상봉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7일(현지시간) 미 하원 세출위원회 국무소위원회 청문회에 화상으로 참여한 모습. 미 국무부 유튜브 캡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7일(현지시간) 미 하원 세출위원회 국무소위원회 청문회에 화상으로 참여한 모습. 미 국무부 유튜브 캡쳐

한국 정부도 이를 반기는 분위기다. 통일부 당국자는 8일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남북대화 계기에 (북ㆍ미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기회가 닿는대로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또 "2018년 적십자회담 등 남북 회담 계기에도 재미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제기했지만 북측이 호응하지 않은 바 있다"고 설명했다.

통상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양측이 서로 만나고자 하는 가족의 명단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미국 국적의 이산가족은 상봉 신청 자격이 없다. 대신 북측 가족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 상봉에 참여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개최된 총 21차례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참여한 재미 한국인은 총 120명이다.

하지만 북한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북·미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분리해 다룬다. 이조차 대미 협상력 제고 수단으로 쓸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전직 대한적십자사 고위 관계자는 "2018년 8월 금강산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북측에 북미 이산가족 상봉 관련 제안을 하자, 북측에선 '남북 이산가족과 북ㆍ미 이산가족 문제는 별개로 다뤄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2018년 8월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이금섬(92)할머니가 아들 리상철(71)을 만나 껴안으며 기뻐하는 모습. 뉴스1

2018년 8월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이금섬(92)할머니가 아들 리상철(71)을 만나 껴안으며 기뻐하는 모습. 뉴스1

북ㆍ미 간에 이산가족 상봉이 본격적으로 논의됐던 건 지난 2011년이 마지막이다. 2011년 5월 로버트 킹 당시 북한인권특사는 북한을 찾아 김계관 당시 외무성 제1부상과 북ㆍ미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논의했다. 이후에도 미국 적십자사 고위 관계자와 뉴욕의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간 물밑 논의가 이어졌다.

당시엔 북한도 호응했다. 같은 해 8월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최근 미국측이 조선계 미국인들의 흩어진 가족친척 상봉문제를 우리측에 제기해왔다"며 "우리 적십자회에서는 미국측이 제기한 이 같은 문제를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대하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미 이산가족의 편지를 북한에 전달하는 등 서신 교환도 시범적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실제 상봉까지 이뤄지진 않았다. 같은 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관련 논의는 끊겼다.

로버트 킹 전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트럼프 행정부 들어선 북한인권특사를 임명하지 않아 2017년 1월 이후 공석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7일(현지시간)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인권특사를 반드시 임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포토

로버트 킹 전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트럼프 행정부 들어선 북한인권특사를 임명하지 않아 2017년 1월 이후 공석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7일(현지시간)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인권특사를 반드시 임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포토

김정은 시기 들어서 북ㆍ미 간 이산가족 상봉 논의는 사실상 전무했다. 지난 2016년 조선중앙통신은 미 의회에서 북ㆍ미 이산가족 상봉 결의안이 통과되자 논평을 내고 "미국이야말로 우리 강토를 둘로 동강 낸 장본인이며, 수백만명의 조선인 이산가족 문제를 산생시킨 주범"이라며 "미국이 마치 재미동포들의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에 관심이나 있는 듯이 생색을 내는 건 가소롭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금 미국은 혈연적 감정을 악용한 인도주의적문제를 걸고 새로운 대조선 인권모략책동의 본격화를 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선 2017년부터 미국인의 북한 여행이 금지되면서 재미 이산가족이 북한을 찾을 길도 아예 사라졌다. 두 차례의 북ㆍ미 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의제에 올려달라는 미 의회 등의 요청이 있었지만, 트럼프 행정부 자체가 인권 문제를 중시하지 않은 탓에 이산가족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2018년 10월 최광철 미주 민주참여포럼(KAPAC) 대표는 브래드 셔먼 의원 등 미국 연방하원의원들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게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미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공식 의제로 상정해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18년 10월 최광철 미주 민주참여포럼(KAPAC) 대표는 브래드 셔먼 의원 등 미국 연방하원의원들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게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미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공식 의제로 상정해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는 조만간 트럼프 행정부 내내 공석이었던 북한 인권특사를 임명하고 북ㆍ미 이산가족 관련 사안을 주요 임무로 부여할 전망이다. 최근 '새로운 북핵 정책을 설명하고 싶다'며 북한에 대화를 타진한 데 이어, 이산가족 문제를 고리로 접촉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ㆍ미 정상회담 결렬 후 인도주의적 차원의 논의에도 냉랭한 반응을 보여온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제안을 인권 공세라는 식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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