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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중사 성추행' 가해자 조사도, 폰 압수도 두달간 뭉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공군 검찰이 '여성 부사관 성추행 사건'을 초기에 넘겨받고도 가해자 조사를 두 달간 한차례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에게 군 법무관이 국선변호인으로 지정됐지만, 그 변호인도 피해자가 '극단 선택'을 암시하기까지 사실상 방치한 정황도 나왔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에 성추행 피해 신고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이모 공군 중사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뉴스1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에 성추행 피해 신고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이모 공군 중사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뉴스1

6일 군 관계자에 따르면 3월 초 공군 제20전투비행단(20전비) 군사경찰은 이모 중사의 성추행 피해 신고를 접수하고, 약 한 달 만인 4월 7일 20전비 군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하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군 검찰은 55일만인 지난달 31일에야 가해자인 장모 중사를 상대로 첫 피의자 조사를 벌였다. 이마저도 첫 조사를 이달 4일 이후로 예정했다가 피해자의 극단선택 뒤 앞당긴 것이었다.

또 군 검찰은 피해자 사망 닷새만인 지난달 27일 장 중사의 휴대전화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놓고도 집행하지 않았던 것이 드러났다. 장 중사의 피의자 조사 날에야 임의제출 방식으로 장 중사의 휴대전화를 확보했다.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실은 "공군 검찰은 장 중사가 조사 때 휴대전화를 임의제출하지 않을 경우 영장을 집행한다는 계획이었다"며 "그가 휴대전화를 순순히 제출하는 바람에 집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본인에게 불리한 내용을 충분히 삭제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군 검찰은 통상 피해자 조사 뒤 가해자 조사를 하는데, 피해자 조사일정이 이 중사의 심리적 불안정 등을 이유로 지연돼 가해자 조사도 미뤄졌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군사경찰 조사 때부터 이미 피해자와 가해자 주장이 극명히 엇갈렸고, 사건 송치 직후인 4월 15일 피해자는 군 성고충 상담관에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까지 보냈는데 안이하게 대처한 것이다. 군 검찰이 미리 가해자 조사를 했다면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이모 중사의 추모소를 찾은 지인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뉴스1

6일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이모 중사의 추모소를 찾은 지인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뉴스1

"국선변호인, 피해자에 도움 안됐다"

한편 국선변호인의 선임절차와 대응이 미흡했던 정황도 나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중사의 국선변호인은 성추행 피해 신고 정식접수 엿새 만인 지난 3월 9일 선임됐다. 공군본부 법무실 소속 군 법무관이었는데, 군 검찰과 '같은 사무실' 소속이다. 그래서 피해자 조력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이 국선변호인은 이 중사의 극단선택 때까지 전화통화만 몇 차례 했을 뿐, 한차례도 면담하지 않았다. 공군은 이에 대해 국선변호인이 결혼·신혼여행·자가격리 등 개인 사정으로 면담이 원활치 못했다고 해명했다. 공군이 이후 국선변호인을 추가로 지정하긴 했지만, 얼마 뒤 이 중사는 극단선택을 했다.

유족 측은 이 중사 사망 직후 민간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 중이다. 유족 측은 내주 초 공군 소속 국선변호인을 직무유기 등 혐의로 추가 고소할 방침이다.

유족 측 김정환 변호사는 "어느 순간 피해자의 '극단적 선택 충동'을 알았는지, 그걸 알고도 변호인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문제"라며 "내주 초 국선변호인 A씨를 직무유기 등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에 고소할 계획"이라고 연합뉴스에 밝혔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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