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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민주적 조직 아니다’ 낡은 신념이 참극 불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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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호 03면

“미국 군대의 경우 인종, 피부색, 성 정체성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군대에서 차별 금지, 인권 교육을 엄청나게 한다. 차별이나 억압이 존재하면 단결이 깨지고, 그러면 같이 망한다는 마인드다. 반면 우리나라 군대는 대다수의 남성으로 이뤄진 동질한 집단이다. 소수자 인권 같은 것에 절박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추행 피해 여군 사망 전문가 반응 #차별과 억압 있으면 같이 망해 #인권 존중 문화·제도 정착돼야

성추행 피해 부사관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4일 김종대 전 의원은 한국 군대가 성폭력뿐 아니라 인권 전반에 둔감한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우리나라는 군인들 스스로가 “민주주의 국가에 군대는 있어도, 군대 민주주의라는 건 없다. 군대는 민주적 조직이 아니다”라는 신념을 가진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인권에 대해 뒤떨어지는 게 군대의 특성이자 본성이라고 보니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다. 김 전 의원은 “인권 문제 관련된 시스템·매뉴얼이 다 있지만, 조직 특성이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력관계가 극단적으로 비대칭적으로 지휘관에게 집중된 상황이다 보니 내부 감시가 없는 폐쇄적·보수적 측면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군 법무관 출신의 여성 변호사 A씨는 사건을 은폐하려다 보니 더 큰 문제로 발전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애초에 어느 선까지 보고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직접적인 성범죄 가해자뿐만 아니라 방역법 위반 등으로 윗선까지도 징계를 피할 수 없으니 쉬쉬한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며 “군의 낡은 관습과 현 제도 사이의 괴리가 존재해서 이런 문제들이 생긴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군형법상 강제추행은 처벌조항 자체가 벌금형 없이 바로 징역형을 규정하는 등 제도적으로 군에서도 여성을 위한 많은 개선사항을 마련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군인권센터 역시 성명서를 통해 “성추행 이후 3개월이 지났으나 군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등 기본적인 성폭력 사건 가이드라인조차 무시한 총체적 피해자 보호 실패 사례”라며 “지침과 규정은 있지만 군은 여전히 피해자 보호에 대한 기본 개념이 없어 참극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도 개혁과 병영 문화·교육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A변호사는 “군 특성상 성 군기 관련 교육 같은 경우 대부분 계급이 낮은 군인들만 참석하고 정작 지휘관들은 듣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존재하는 제도에 대해 확실하게 주지시키고, 지휘부가 이를 유명무실하게 놔두는 식의 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전 의원은 “인권 옴부즈맨 등 외부 감시체계 강화, 군사법원 해체 등 여전히 제도를 개선할 여지가 많다”고 주장했다. A변호사 역시 군사경찰이 군 검찰의 수사지휘나 통제를 받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가 수사 시작단계에서 아예 사건을 묻으려고 시도한 원인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군인권센터는 “재발 방지를 위해 가해자 즉각 구속, 사건을 조작·축소·은폐하려고 2차 가해를 일삼은 이들과 피해자 보호에 실패한 지휘관에 대한 엄중 수사와 문책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오유진·원동욱 인턴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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