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과 경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처칠이 승차거부를 당한 일이 있었다. 택시를 붙들고 어서 빨리 의사당으로 가자고 했다가 거절을 당했다. 이유가 걸작이다. 방금 처칠의 의회연설이 있을 예정인데 그 택시기사는 방송중계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칠은 어이가 없었다. 그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 했지만 이번엔 또 다른 이유를 댔다. 연설시간에 맞춰 차를 대려면 교통위반을 해야할텐데 자기는 그 짓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총리에, 그 운전사다.
어디까지 믿어야 좋을지 모르지만 영국사람들이 즐기는 조크의 하나다. 그 얘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영국 사람들은 그런 총리를 좋아해 그런 농담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실제로 필리핀의 막사이사이 대통령은 교통법규를 철저히 지켰다. 행여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면 운전사는 가차없이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마닐라는 오토바이가 하도 많아 정신이 없는 도시다. 대통령쯤 되면 당연히 그런 혼란을 피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만 하다. 아니, 주위 사람들이 알아서 길을 비켜 줄만하다. 그러나 막 사이사이는 끝내 사양했다.
우리 나라의 국회의원이 센 것은 이미 뇌물의 액수로도 정평이 나있지만 새삼 처칠이나 막사이사이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요즘 길거리에서 확인하고 있다. 엊그제 평민당의 어떤 의원은 서울영등포시장 로터리에서 주차위반시비를 하다가 교통경찰에게 주먹을 날렸다. 문제의 장소는 서울에서도 교통이 복잡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여기서 주차위반을 할 정도면 보통 강심장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다.
국회의원의 무용담은 우리 나라에선 별로 낯선 얘기가 아니다. 지방도시에서도 바람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이번엔 그 위력이 드디어 서울에까지 입성한 것이다.
문득 정치인들도 자격검정시험을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던 생각이 난다. 주먹이 든든한 의원들은 차제에 주먹의 크기도 자격요건 속에 포함시켜야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검정시험을 보아야한다는 소리는 정치부패 얘기가 빈번한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다.
공자말씀이 생각난다. 군자는 자신의 무능을 근심하지만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탓하기 않는다. 하긴 요즘 어디 군자가 정치하는 세상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