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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기회복지”…정치권 “시의적절”vs“철 지난 성장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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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던진 ‘기회복지 담론’이 정치권에 작은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기본소득론에 맞설 큰 파도가 될 거라고 기대와 금방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은 “성장과 연결되는 '기회'라는 단어와 분배를 의미하는 '복지'를 접합해 신선함을 줬다”며 “김 전 부총리의 행보가 본격화되면 평가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연 유쾌한반란 이사장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금융 국민은행 신관에서 열린 ‘청년들과 공감, 소통의 장, 영리해(Young Understand)’ 강연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동연 유쾌한반란 이사장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금융 국민은행 신관에서 열린 ‘청년들과 공감, 소통의 장, 영리해(Young Understand)’ 강연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 전 부총리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 경기 의정부시에 있는 한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이 ‘기회 단절’을 겪고 있다는 사연을 올렸다. 그런 뒤 “소녀가장 역할을 하는 고3 학생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며 “현금복지를 늘린다고 해서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현금 복지는 최근 복지의 트렌드가 됐고 그 첨단에 이재명 경기지사 등이 주장하는 기본소득론이 있다.

그는 “기회와 역할을 주면 신바람 나게 일하고 도전할 수 있다”며 “현금복지가 아니라 기회복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회 복지는 더 많은 기회, 더 고른 기회를 만드는 것”이라며 “수많은 흙수저도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공화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부총리와 자주 연락한다는 한 정치권 인사는 “그는 기회복지를 자신의 정책 브랜드로 삼고 담론을 더 키워나갈 것”이라며 “다음 달쯤 기회복지를 자세히 설명하는 책도 나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의적절” vs “철 지난 성장 담론” 정치권·학계 논란

조정훈(왼쪽) 시대전환 의원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조정훈(왼쪽) 시대전환 의원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김 전 부총리와 세계은행(월드뱅크)과 아주대에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기회와 복지 중에서 기회에 방점이 찍힌 것 같다. 청년들이 능력은 충분한데 기회가 부족해서 분노하고 있는 현실을 헤아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본소득을 주장해온 조 의원은 “‘현금복지 아니면 기회복지’ 같은 택일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청년들에겐 현금복지도 필요하지만 스스로 성장하고 부를 쌓을 기회가 절실하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회복지'라는 슬로건은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론에 맞설 담론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어온 더불어민주당 내 반(反)이재명 진영에서 반향이 컸다. 이낙연 전 대표를 돕고 있는 한 재선 의원은 “이 지사의 기본소득을 ‘현금복지’로 명명하고 대안으로 기회복지를 제시하는 정무적 판단에 놀랐다”며 “강연 장소를 특성화고등학교로 설정한 것도 시의적절했다”고 말했다.

평소 혁신 성장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대선 주자 이광재 의원도 공감을 표시했다. 이 의원은 “현금을 지원하는 방식의 복지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며 “기회복지란 말은 혁신성장과 복지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점을 잘 포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0년 뒤면 경제활동 인구 100명당 40명을 부양해야 하는데 복지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혁신성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냉소적 반응도 적지 않다. 이재명 지사를 돕고 있는 안민석 의원(5선)은 “기회도 복지도 아닌 언어유희 같다”며 “철 지난 성장 담론의 변형”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한국이 선진국 문턱에서 더 못 올라가고 있는 것은 기회와 성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회 통합을 만들 새 어젠다가 없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재정 정책 전문가인 양경숙 민주당 의원은 “기회와 성장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기회복지란 말 자체가 경제 철학이 되기엔 뜻이 너무 모호하다”며 “전문가도 한 번에 못 알아듣는 주장을 어떻게 국민에게 이해시키고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전 부총리는 보수 진영의 잠룡’이라고 주장하는 야당에선 “중도우파적 대안 담론”이라고 반기고 있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복지 프레임에 밀렸던 기회와 공정을 다시 꺼낼 수 있는 중심축이 될 것”이라며 “중도층에게 현금을 주겠다는 것보다 공정한 기회를 주겠다는 게 더 매력적이지 않겠냐”고 말했다.

학계의 반응도 엇갈렸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회를 늘려서 일자리를 잡도록 하는 게 현금을 주는 것보다 최선의 복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무도 못 알아듣는 말을 만들어 놓고 2030세대 표를 얻어보려 한다”며 “한국 경제에서 30대 중반부터 4050 세대 허리 층의 붕괴가 가장 심각한 문제인데 진단을 잘못했다”고 비판했다.

송승환 기자, 김보담 인턴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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