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기준 바꾸자…소득 '0.7% 감소→0.4% 증가' 둔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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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증가’ 또는 ‘0.7% 감소’

3년 새 두차례 통계 기준 개편 #'시계열 단절'로 통계 비교 힘들어 #통계 질 악화, 통계불신 초래 우려

통계청이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밝힌 전년 대비 ‘가구당 월평균 소득 증감률’은 이처럼 전혀 다른 두 가지 수치가 공존한다. 개선된 것으로 나온 앞의 수치(0.4% 증가)는 올해 새롭게 1인 가구를 조사 대상에 포함하면서 나온 통계청 공식 자료고, 악화한 것으로 나온 뒤의 수치(0.7% 감소)는 기존 방식으로 조사해 나온 참고 자료다. 조사 기준을 변경했는데, 마이너스가 플러스로 바뀐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통계청은 올해 1분기부터 1인 가구를 포함한 기준으로 결과를 공표한다.

반복된 통계 개편으로 기준이 달라지는 가계동향조사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 입맛에 맞는 결과를 내기 위해 통계 기준을 바꾼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달라진 가계동향조사 기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달라진 가계동향조사 기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24일 기획재정부·통계청과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 등에 따르면 그간의 사정은 이렇다. 애초 통계청은 가계동향조사의 소득 조사를 2017년 이후 폐지하기로 했다. 정보 노출을 꺼리는 고소득자의 참여가 저조하고, 다른 조사로 대체가 가능해서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소득주도성장’의 효과를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권에서 제기됐고, 통계청은 표본을 늘리는 방식으로 이를 존속시켰다.

문제는 대표적인 소득분배 지표인 소득 5분위 배율이 2018년 1분기 역대 최악으로 나오면서다. 정부의 당초 기대와는 정반대의 결과였다. 이후 여당에선 ‘통계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통계청은 다시 조사 표본과 조사방식을 바꿨다. 이처럼 3년간 같은 조사를 놓고 통계 기준을 두 차례 뜯어고치면서 그간 축적된 과거 수치와 현재를 비교할 수 없는 ‘시계열 단절’이 발생했다.

공교롭게도 새로운 기준을 적용한 이후 각종 소득ㆍ분배 지표는 나아지고 있다. 올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도 새롭게 1인 가구와 농림어가를 포함했더니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38만4000원으로 1년 전보다 1만6000원(0.4%) 증가했다. 기존 2인 이상 비(非)농림어가 기준으로는 감소한 것(535만8000원→532만원)에 비해 가계의 소득 지표가 개선된 것으로 나왔다.

2021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비교.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21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비교.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도 올해 1분기에 새 기준의 개선 폭(6.89→6.30)이 기존 기준(5.61→5.20)보다 더 크다.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는 차이가 더욱 도드라진다.  기존 기준을 적용하면 2019년 4분기 4.80배에서 지난해 4.81배로 악화(클수록 불평등)했다. 그러나 새 기준을 적용하면 같은 기간 5.83배에서 5.78배로 되려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관계자는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중이 지난해 30%를 넘는 등 달라진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며 “전문가들의 심의를 거쳐 기준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를 근거로 “이와 같은 소득분배 개선은 그간의 포용정책 강화의 토대 위에 코로나19 피해 지원이 더해진 데에 기인한다”고 자평했다. 3차 재난지원금과 올해 1차 추가경정예산(추경) 등 확장재정이 역할을 한 덕에 가구 월평균 소득이 증가하고 소득 분배지표도 개선됐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통계의 연속적인 비교가 불가능해지면서 통계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과거와 견줘 지표의 개선 여부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정책 결정에 오류가 생길 수도 있다. 야당에서는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자 ‘비교 가능성’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통계 기준을 개편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유경준 의원은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코로나 확산으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됐다’고 했는데, 홍 부총리는 불과 열흘 뒤에 ‘소득 분배가 개선됐다’는 반대의 얘기를 했다”면서 “문 대통령과 정부가 그때그때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입맛에 맞게 소득 및 분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이어 “통계청이 1ㆍ2차 가계동향조사 개편에 총 160억원을 투입했지만, 통계의 질은 더 나빠졌다”면서 “바뀐 통계를 이전과 정확히 비교하지 못하게 한 것은 대국민 기만행위”라고 주장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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