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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김정은에 '진정성 포장용' 정상회담 안해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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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ㆍ미 정상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 외교적 관여 필요성에도 한목소리를 냈지만, 접근법에서는 차이가 드러났다.

한ㆍ미 정상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목표" #美, 성김 대사 '대북 특사' 임명…관여 의지 #바이든 "북한 핵 심각한 우려" 위협도 부각 #"비핵화 의지? 말로 판단 안해" 행동 강조

문재인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싱가포르 성명 등 과거 합의를 토대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을 통해 북한과 외교를 모색한다는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남북  대화와 협력에 대한 지지도 표명했다”며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 속에 남북관계 진전을 촉진해 북ㆍ미대화와 선순환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과 ‘선순환’을 전제하긴 했지만, 남북관계가 앞서나갈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1년여 전에는 “이제는 북ㆍ미 대화만 바라보지 않고 남북 간에 있어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은 찾아내서 해 나가자”(2020년 5월 1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고도 했는데, 이보다는 신중한 입장이지만 여전히 남북관계 드라이브에 대한 의지를 보인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양국은 북한에 외교적으로 기꺼이 관여하겠다는 의견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두 정상 모두 목표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밝힌 점도 눈길을 끌었다. 정부는 2018년 4ㆍ27 판문점 선언에서 북한이 꺼리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 대신 ‘완전한 비핵화(CD)’라는 표현을 썼고, 이번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 정책에서도 같은 용어를 사용하기를 원해 왔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정부는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북한에 대한 ‘외교적 관여’를 강조한 데 대해 고무된 분위기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성 김 주인도네시아 미국 대사를 대북 특사(special envoy to DPRK)로 임명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런(대화와 관여) 노력을 가속화하기 위해서 이 자리를 빌어 공식 임명한다”며 김 대사를 일으켜세워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최태원 SK 회장과 성김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대행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장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태원 SK 회장과 성김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대행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장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대사는 북ㆍ미 비핵화 협상의 산증인이라고 할 정도로 북한 문제에 정통한 외교관이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통한 외교를 할 것이며, 이미 대화의 준비가 돼 있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라며 공개적으로 환영했다.
실제 바이든 행정부 들어 북한 인권 특사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어느 급으로, 누구를 임명할지는 정부의 큰 관심사였다.

문재인·바이든 대통령 주요 발언.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문재인·바이든 대통령 주요 발언.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외교 소식통은 “가치 외교를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때 공석이었던 북한 인권 특사를 다시 임명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인권 문제로 압박할 북한 인권 특사는 높은 대사급인데,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전처럼 부차관보가 겸하는 식으로 더 낮은 급으로 임명한다면 이 자체가 북한에 부정적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게 정부가 걱정하는 부분이었다”고 귀띔했다. 김 대사는 직전에 국무부 차관보 대행을 맡았는데, 이는 대북 특사의 급 자체가 예전같은 ‘부차관보 겸임’보다는 높은 수준이라는 뜻이다. 정부가 김 대사의 특사 임명을 반기는 또다른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공동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공동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와 함께 북한이 가하는 위협도 주목했다. 그는 “우리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프로그램이 가하는 지속적 위협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우리 모두 현상황에 대해 깊이 우려했다”고 밝혔다. 북핵을 "집단 안보의 문제"라고도 규정했다. 남북 협력에 대해서는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의 진정한 비핵화 의지 없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그는 “김정은과 전제조건 없이 만나지는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기자가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그렇다면 김정은이 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보느냐”고 묻는 데 대해 “나는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할지, 말지를 그 사람의 말을 갖고 판단하지 않는다. 의지가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답했다. 말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진정성을 보일 만한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비핵화 의지가 있다면 만날 수도 있지만, 그 의지란 것은 핵무기고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또 “최근에 있었던 일을 반복하진 않겠다”며 “그에게 그가 추구하는 것들, 국제적 인정과 합법성, 또 그가 전혀 진정한 의지가 없지만 진정성이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이 가능하도록 해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2018년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위해 만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 연합뉴스

2018년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위해 만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 것 자체가 체제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라는 국내외적 비판을 의식한 발언으로, 이벤트성 정상회담은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명확히 한 것이다. 진정성을 언급한 것은 지난 두 차례의 북ㆍ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실제로는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나의 팀이 우선 북한 카운터파트들을 만나야 한다”며 비핵화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이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실무협상으로 먼저 비핵화 로드맵을 그리는 ‘바텀업’식 접근법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워싱턴=공동취재단, 서울=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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