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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41년만에 무릎 꿇은 5·18 계엄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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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1980년 5월 3공수여단 11지역대대장으로 광주에 투입됐던 신순용 전 소령이 참배하며 절하고 있다. 옛 광주교도소 총격과 암매장 등 상황을 구체적으로 증언한 바 있는 신 전 소령은 계엄군 지휘관으로는 최초로 이날 5·18묘지를 공식 참배했다. 연합뉴스

21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1980년 5월 3공수여단 11지역대대장으로 광주에 투입됐던 신순용 전 소령이 참배하며 절하고 있다. 옛 광주교도소 총격과 암매장 등 상황을 구체적으로 증언한 바 있는 신 전 소령은 계엄군 지휘관으로는 최초로 이날 5·18묘지를 공식 참배했다. 연합뉴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된 신순용 전 육군 소령이 21일 광주를 방문해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유족 측에 사과했다. 유족들은 신 전 소령의 손을 맞잡았다. 과거 지휘관의 공식적인 5·18민주묘지 참배는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육군 지휘관, 5·18 묘역서 "미안합니다"

신 전 소령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3공수여단 11지역대대장으로 복부하고 있었다. 1980년 5월 19일 그는 부대원들과 함께 용산에서 기차를 타고 광주로 내려갔다. 신 전 소령이 광주에서 수행한 작전은 교도소 방어 작전, 광주 고립 및 봉쇄 작전 등이었다고 한다.

이날 신 전 소령은 묘지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미안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광주에 투입됐던 당시 상황에 대해 "광주에 폭동을 진압하러 간다고만 알고 왔다"며 "폭도라고 생각해 스스럼없이 행동하지 않았나 싶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이후 사람을 죽이고, 묻는 꿈을 꾸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그렇게 안 해도 됐는데 왜 그렇게 했을까 하는 후회와 죄책감에 괴로웠다"고 말했다.

"광주 시민, 군에 빵과 음료 나눠줬다" 

신 전 소령은 오히려 광주 시민들로부터 군이 도움을 받은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신 전 소령은 광주에 도착한 다음 날인 1980년 5월 20일 금남로 4가에 배치됐다가 2만 군중으로부터 포위를 당했다고 한다. 신 전 소령이 부대원을 자리에 앉히고 시민들 앞에 나서서 설득하자, 시민들이 길을 비켜 군인들의 퇴로를 열어주고 길까지 안내해줬다는 내용이다. 신 전 소령은 시민들이 온종일 굶고 있던 공수부대원들에게 빵과 음료를 한 트럭 싣고 와 나눠주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5·18 당시 떳떳하지 못한 군인의 행위로 고통을 느끼신 분께 너무나 죄스러워 진심으로 묘역을 참배해야겠다고 생각해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신 전 소령은 "41년간 5·18 진상규명 과정을 지켜보며 진실이 왜곡되는 것 같아 직접 나서 밝혀야겠다는 생각에 2016년부터 증언에 나서 제가 목격한 것을 직접 밝히려 했다"며 "진실이 밝혀지면 동조하는 동료 증언자도 더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21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1980년 5월 3공수여단 11지역대대장으로 광주에 투입됐던 신순용 전 소령(오른쪽)이 참배 뒤 김영훈 유족회장과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1980년 5월 3공수여단 11지역대대장으로 광주에 투입됐던 신순용 전 소령(오른쪽)이 참배 뒤 김영훈 유족회장과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유족회장 "화해 자리 만들어봅시다" 

이날 신 전 소령의 묘지 참배에는 김영훈 5·18 유족회장도 함께 했다. 김 유족회장은 사과하는 신 전 소령의 손을 붙잡았다.

김 유족회장은 "큰 용기를 내줘 감사하다"며 "신 전 소령에게도 지난 41년이 얼마나 피 마른 시간이었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김 유족회장은 "군은 지휘계통상 전두환의 지시를 거부 못 했을 것을 이해한다"라며 "앞으로 화해의 자리를 만들어보자"고 신 전 소령의 사과에 화답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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