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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 유출=수사 정보 유출? 박범계 '형전법' 카드 꺼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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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1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뉴스1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1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뉴스1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공소장 유출과 관련해 수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박 장관은 21일 오전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이 지검장 공소장 유출은) 위법의 소지가 크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정하고 투명한 형사사법 절차를 만들기 위해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을 관리하는 법이 있고 그런 형사사법 정보를 누설·유출하는 경우에는 처벌 조항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장관이 언급한 법은 ‘형사사법 절차 전자화 촉진법(형전법)’이라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이 법 제14조 제3항은 “형사사법 업무에 종사하거나 종사하였던 사람 등은 직무상 알게 된 형사사법 정보를 누설하거나 권한 없이 처리하거나 타인이 이용하도록 제공하는 등 부당한 목적으로 사용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과거 수사기밀 유출에나 적용한 혐의

과거 공소장 유출 행위에 형전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사례는 없다. 해당 죄목은 대부분 수사가 진행 중인 단계에서 수사기밀(압수수색 계획 등)이 유출됐을 때 주로 적용됐다. 최근 사례로는 국내 자동차 업체 A사의 엔진 결함 은폐 의혹 관련 수사 정보를 A사 직원에게 유출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 소속 수사관 박모씨가 지난해 7월 구속기소된 적이 있다.

애초 박 장관은 공소장 유출 문제에 대해 피의사실공표죄나 공무상기밀누설죄 적용을 염두에 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17일 “기소된 피고인이라도 공정하게 재판 받을 권리와 이익이 있고 개인정보와 같이 보호해야 할 가치, 수사 기밀과 같이 보호할 법익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의사실공표죄는 공표 시점이 기소 전이어야 성립된다. 공무상기밀누설죄의 경우 외부로 공유된 공소장을 기밀로 보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공소장 내용은 1차 공판기일에 공개되는데, 조만간 공개 예정인 정보를 어떻게 비밀로 볼 수 있느냐는 해석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소장 유출이 형전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을 여지는 있어 보인다”면서도 “공정한 수사를 방해하는 행위를 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해당 조항의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수사가 종료된 이후 벌어진 공소장 유출에 이 혐의를 적용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7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차를 타고 출근 중이다. 뉴스1

지난 17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차를 타고 출근 중이다. 뉴스1

박범계, 또 수사 지휘 나서나

박 장관이 수사 가능성을 시사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법무부 장관이 개별 사건과 관련한 수사 지휘·감독을 할 경우 반드시 검찰총장을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오늘 박 장관이 어떤 의도로 수사 관련 언급을 한 건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며 “검찰의 소관인 수사 업무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의식한 듯 박 장관은 이날 “수사로 이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게 되면 수사 지휘가 되는 거니까…그 부분은 지금 단계에서는 말씀드리기 조금 이르다”고 답했다. 또한 “어떤 법률에 저촉되느냐 하는 것은 아직 유출자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중히 (진상 조사를)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장관이 공소장 유출을 문제 삼고 있지만, 보수성향 시민단체인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는 오는 24일 박 장관을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이 지난 3월 17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의혹에 대한 수사 지휘권을 발동하며 관련자의 피의 사실을 누설했다는 게 고발장의 요지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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