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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5월 중순쯤 등판"…'도사' 김종인의 예언 빗나간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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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왼쪽)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중앙포토

김종인(왼쪽)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중앙포토

“5월 중순쯤 가면 아마 어떤 형태로든지 의사 표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3월 26일)
“자기가 확신이 서면 5월 중순 정도 자기 의사를 표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5월 2일)

그동안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월 중순’에 본격적으로 정치 무대에 오를 것이란 전망을 여러 차례 내놨다. 그러나 산술적으로 5월 중순의 마지막 날인 20일까지도 윤 전 총장은 자신의 정치 행로에 대해 구체적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대신 윤 전 총장은 지난 17일 서울대 반도체 연구소를 찾은 것처럼 비공개 일정을 진행한 뒤 사후에 알리는 식의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본인이 직접 대중 앞에 나서 정치 행보를 공식화하는 세리머니는 없었다. 윤 전 총장 주변에선 “빠르면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끝나는 6월 11일 이후, 늦으면 7월에나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尹 주변에선 “빠르면 6월 중순, 늦으면 7월 등판” 관측

윤 전 총장과 함께 서울대 법대에서 ‘형사법학회’ 활동을 했던 석동현 전 서울동부지검장은 20일 페이스북에 “어차피 (윤 전 총장의) 갈 길은 정해진 터. 정치적 외부 활동은 서두를 필요가 없는 듯하다”며 “지금은 내공 쌓기에 더 큰 비중을 둠이 마땅하다”고 공개 조언을 하기도 했다.

윤석열 전 총장의 ‘5월 중순 등판’ 예언은 일단 빗나갔지만 그동안 김종인 전 위원장의 예측은 꽤 높은 적중률을 보였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그런 경우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17일 주목할 차기 대선 주자로 김 전 부총리를 지목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김 전 부총리가 움직이는 것으로 안다”며 “경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경제 대통령’ 얘기와 함께 (대선에) 나올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김동연, 김종인 예언 후 ‘기회복지’ 들고 나와 

그런데 그런 발언이 나온 직후인 20일 김 전 부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회복지’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그는 “‘기회복지’는 결국 기회의 양적 확대와 질적 개선”이라며 “우리 경제, 사회의 틀과 제도, 의식의 총체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 새 판을 짜는 경장(更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래야 힘든 처지의 학생, 청년, 자영업자, 수많은 흙수저들도 열심히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공화국’을 만들 수 있다”며 “이제 그 길을 가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했다. 언뜻 보면 ‘경제민주화’, ‘소득 주도 성장’과 같은 대선 주자의 정책 담론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3월 15일 당시 오세훈(왼쪽)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야권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위해 TV토론을 하기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오종택 기자

지난 3월 15일 당시 오세훈(왼쪽)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야권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위해 TV토론을 하기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오종택 기자

결과적으로 적중한 김 전 위원장의 또 다른 대표적 예언은 4·7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서울시장에 당선된다는 전망이었다.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서울시장 야권 후보 단일화 경쟁에 대해 승리를 자신했다. 틈만 나면 “국민의힘 후보가 결정되면 안철수 후보를 꺾는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이 예상은 들어맞았다.

김 전 위원장은 또한 선거 승리 다음날인 지난달 8일 국민의힘을 떠나면서는 “(국민의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내부 분열과 반목”이라고 했고, 며칠 뒤 언론 인터뷰에서는 “아사리판”이라고 했다. 이 또한 6·11 전당대회를 앞두고 홍준표 무소속 의원의 입당이나 김종인 전 위원장 재영입을 놓고 당내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상이 맞았다고 볼 수 있다.

김종인 적중 예언 상당수는 ‘자기 충족적 예언’ 성격

그러나 이러한 예언이 상당수 적중한 건 일종의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래의 예측에 맞는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그에 맞는 행동을 해서 실제 결과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는 뜻이다. 야권 단일화 승리는 제1야당의 저력이 밑바탕이 됐고, 단일화 협상단도 김종인 당시 위원장의 지시를 따른 이유가 크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김종인 위원장은 단일화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최대한 늦게 여론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아사리판”이 된 것도 재·보선 뒤 당 대표가 없는 권력 진공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탓이 크다는 의견이 나온다. “재임 시절엔 당을 흔들지 말라고 하더니 (김종인 전 위원장) 자신은 나가자마자 당을 흔들어 대고 있다”(장제원 의원)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치권에선 김종인 전 위원장의 예언을 일종의 ‘신호’로 이해하기도 한다. 국민의힘 영남권 중진 의원은 “윤 전 총장이 5월 중순에 등판한다는 얘기는 반대로 보면 ‘5월 중순 전에 나에게 오라’는 뜻 아니었겠냐”며 “그런데 윤 전 총장 반응이 미지근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 김종인 전 위원장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윤 전 총장을 만난 적도 없고, 연락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김 전 위원장이 김동연 전 부총리를 언급한 건 윤 전 총장의 등판 시기가 자꾸 늦어지면 안 된다”는 뜻이란 해석도 나온다.

“尹 5월 중순 등판설, 일종의 신호 아니었겠냐”

앞으로 김종인 전 위원장의 예언 적중률은 어떻게 될까.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껏 한번도 내가 먼저 가서 (누굴 도와주겠다고)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대선 후보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예언 적중률도 달라질 수 있는 셈이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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