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법무부, 유시민 공소장도 국회 제출 거부…"왜 하필 이들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법무부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을 제출하라는 국회의 요구를 거부했다.

법무부는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위원님께서 요구하신 공소장은 아직 공판기일이 진행되지 아니하여 전문을 제출할 경우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사건 관계인의 사생활과 명예 등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제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0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0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법무부는 이어 “다만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 제6조 및 제11조에 따라 피고인, 죄명, 공소사실 요지, 공소제기 일시, 공소제기 방식 등에 관한 자료를 제출한다”며 “유 이사장이 지난해 4월, 7월 △△△라디오 ▽▽▽의 ▽▽에 출연하여 피해자 한□□이 수사권을 남용해 ○○ 재단 명의의 계좌를 열람·입수했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으로 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공소사실 요지 등만 짤막이 적어 회신했다. 앞서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3일 유 이사장을 라디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법무부가 이러한 답변의 근거로 든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재임 시절인 2019년 10월 마련됐다. 이전까진 국회의 요청이 있을 경우 법무부는 개인정보를 가린 공소장 전문을 제출해 왔지만, 이후에는 울산시장 선거개입 및 청와대 하명수사 사건,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 등 공인(公人)이 연루된 사건의 공소장은 전문 공개를 거부했다.

법무부가 18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대한 공소장 제출을 요구하는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실에 ″인권 침해 우려가 있어 제출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실 제공

법무부가 18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대한 공소장 제출을 요구하는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실에 ″인권 침해 우려가 있어 제출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실 제공

반면 정인이 아동학대 사건의 양부모 등 일반인 흉악범에 대해선 여전히 국회에 공소장 전문을 제출해 왔다. 여권 정치인이나 공직자 등 공인에 대한 공소장 공개 기준만 엄격해진 셈이다. 수사기관의 ‘봐주기 수사’ 등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를 국회의 권한으로 견제·감시할 통로가 막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증언감정법 4조는 ‘국가기관은 국가기밀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 직무상 비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증언이나 서류 등의 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관련 수원지검 안양지청의 1차 수사(2019년 6월)를 가로막은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기소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공소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데 대해 지난 14일 대검찰청에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도읍(가운데), 조수진(오른쪽),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법무부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공소장 유출 진상조사 지시 관련 성명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도읍(가운데), 조수진(오른쪽),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법무부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공소장 유출 진상조사 지시 관련 성명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이와 관련,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17일 출근길에 “개인정보, 또 수사기밀과 같은 보호 법익이 있는데 그걸 통칭해 침해된 게 아닌가 의혹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페이스북엔 “단순한 평면 비교, 끼워 맞추기식 비교는 사안을 왜곡한다”고 썼다.

이에 대해 한 법조계 인사는 “박 장관은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에 대해 ‘절차적 정의의 표본이 왜 하필 김학의여야 하느냐’고 했는데, 그렇다면 법무부의 법익 수호 노력의 표본은 왜 하필 이성윤·유시민이어야 하느냐”고 꼬집었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법정에서 공소사실이 드러나게 되는 1회 공판기일 전엔 공소사실 요지만을, 그 후에는 원칙적으로 공소장 전부를 국회의원에게 제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은 1회 기일 전이므로 요지만 제출했을 뿐이며, 광주 세 모녀 사건과 스파링 가장 학교폭력 사건은 1회 기일 후에 공소장을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