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언론개혁 대신 민생에 집중해야 한단 말은 개혁진영 내 분란을 키워 개혁의 힘을 빼려는 ‘반간계(反間計)’에 불과하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10일 검찰·언론개혁 드라이브 재시동을 촉구하는 장문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지난 7일에도 “언론개혁 없이 민주주의도 없다”는 글을 올렸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4주년 기념 연설이 있던 이 날 메시지는 지난 1월 27일 장관 퇴임 이후 가장 강경했다.
추 전 장관은 “‘개혁이냐 민생이나’라는 양자택일 논리는 기득권 세력이 주입한 개혁에 대한 두려움일 뿐”이라며 “보수야당의 간교한 정치적 주문을 쇄신이라 착각하고 개혁 고삐를 늦추면 개혁세력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라고 적었다. 추 전 장관의 말은 검찰·언론개혁보다 부동산 대책 등 민생 현안을 우선순위에 올린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지도부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추 전 장관의 말에 여전히 민주당 당원게시판을 장악한 문파(文派)들은 “개혁을 미루면 민주당은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 “송영길 대표는 추 전 장관 말을 새겨들어라” 등의 댓글로 호응했다. 추 전 장관에겐 응원·지지 글이 담긴 ‘문자 폭탄’이 쏟아졌다.
문파는 ‘秋의 힘’
추 전 장관이 문 대통령 회견 일에 새 지도부를 공격한 것을 당내에선 대선 출사표의 예고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추 전 장관의 한 측근은 “지금은 고민의 시간이다. 고민이 끝나면 앞만 보고 달릴 것”이라고 말했지만,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문파를 기반으로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장관 퇴임 이후 대선 도전이 기정사실로 보였던 추 전 장관의 움직임은 4·7 재·보선 완패의 원인으로 ‘추·윤 갈등’이 거론되면서 크게 둔해졌다. 5·2 전당대회에서 ‘친문 자성론’이 커지며 쇄신론을 앞세운 송 대표가 당선되자 온라인상의 문파 권력을 동력 삼은 추 전 장관의 도전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최근 당원 게시판과 친문 커뮤니티에는 쇄신론에 대한 문파의 거부 반응이 노골화되고 있다. 송 대표가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지난 3일)하고 부동산특위 위원장에 규제 완화론을 펴 온 김진표 의원을 임명하면서 반발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일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가 “(문파의) 문자 폭탄은 민주적 방식이 아니다”라고 말하자 당원 게시판에는 “김부겸 사퇴”를 요구하는 글이 쇄도했다.
“추미애 뜨면 윤석열도 뜰 것” 우려도
대의원·당원 투표인 전당대회와 국민경선 방식인 대선 후보 경선을 단순 비교하기 어렵지만 지난 5·2 전당대회에서 홍영표 의원이 득표한 35%는 당내 경선에서 친문·친조국 성향의 문파들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의 최대치로 평가되곤 한다. 민주당의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이낙연 전 대표나 정세균 전 총리가 이재명 경기지사 지지로 돌아서기 어려운 문파들의 지지를 아직 그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추 전 장관이 노릴만한 공간이 남은 셈”이라고 말했다.
추 전 장관을 제외하면 4·7 재·보선 이후 당내에서 문파들의 창구 역할을 하는 건 김용민 최고위원과 박주민 의원 정도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7일 친문(親文) 방송인 김어준 씨의 유튜브 방송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수석 최고위원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주민 의원은 10일 새 지도부 선출로 활동기한이 끝난 옛 검찰개혁특위 소속 의원들을 모아 향후 진로를 논의했다. 한 참석 의원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단 의견이 많은데도 강행군을 하려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들의 움직임이 대선 후보 경선 국면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응집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추 전 장관의 대선 레이스 참여 가능성이 커지면서 당내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방의 한 3선 의원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드라이브와 추·윤 갈등은 당심·민심 괴리의 대표 사례”라며 “추 전 장관의 등장 자체가 이탈중인 중도층의 회의감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여권엔 추 전 장관의 등장이 추·윤 갈등의 대립쌍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존재감을 키우는 효과로 귀결될 거라는 걱정도 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지난해 1월 초 한 자릿수였던 윤 전 총장 지지율은 ‘추·윤 갈등’이 절정이었던 지난해 11월 10~12일 처음 두 자릿수(11%)로 올라섰다. 같은 조사에서 한때 25%(4월 13~15일)까지 올랐던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은 최근(5월 4~6일)엔 22%로 횡보 중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법조인 출신의 한 초선 의원은 “추 전 장관이 출마를 선언하면 윤 전 총장과의 ‘리턴매치’를 강조할 게 뻔하다”며 “그럴수록 윤 전 총장은 손 안 대고 보수층 지지를 끌어당기는 반사이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