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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자화자찬 일관한 정부 경제 보고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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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6일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재부는 문재인 정부 4년 경제정책 보고서를 내면서 최대 실책인 부동산정책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6일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재부는 문재인 정부 4년 경제정책 보고서를 내면서 최대 실책인 부동산정책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기획재정부가 지난 7일 내놓은 일종의 자가진단서인 ‘문재인 정부 4주년 그간의 경제정책 추진 성과 및 과제’만 보면 이런 태평성대가 없다. 국내 기업은 정부의 규제 철폐로 그 어느 때보다 경영 여건이 좋아졌고, 국민 역시 높아진 소득에 지출 부담은 낮아져 그 어느 때보다 질 높은 삶을 영위하고 있다. 정말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면 좋으련만 정부의 상황 인식과 국민의 눈높이는 너무 달라 당황스러울 정도다.

실패한 부동산 언급 않고 일자리 참사는 축소 #냉정한 진단 없어 실패한 정책 고수할까 걱정

보고서는 거시경제·혁신성장·포용성장이라는 3대 축에서 10개 성과를 냈다고 자랑한다. 성장은 둔화되고 분배는 악화되는 상황이었는데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구축에 주력한 덕분에 빠르고 강한 경제 회복과 아울러 가계소득은 늘고 기업엔 혁신 분위기가 조성되는 등 개선이 시작됐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숫자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한다. 가령 정부는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위기에도 불구하고 주요국 대비 가장 빠른 속도로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고 주장한다. 현실은 올해 우리 성장률 전망(3%대)이 경기 회복 신호가 뚜렷한 미국(7%)뿐 아니라 프랑스(5.8%)·영국(5.3%) 등 선진국에 비해서도 낮다. 정부의 규제 혁파로 제2의 벤처붐이 확산하고 있다는 자평도 마찬가지다. 혁신적인 차량 공유 서비스 ‘타다’ 갈등 하나 제대로 중재하지 못하고 오히려 규제로 기업 발목을 잡은 걸 온 국민이 목격하지 않았나. 오죽하면 국내 1호 유니콘 기업 쿠팡이 한국 대신 미국 상장을 택했을까. 쿠팡은 지난 3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신고서를 제출하면서 한국의 각종 규제 리스크를 언급하기도 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 등 무리한 소득주도성장 탓에 사라진 일자리에 대한 반성 역시 없다. 100만 명씩 줄다 지난 3월 13개월 만에 처음으로 늘었지만 주력인 3040은 오히려 25만 명 줄고, 60세 이상에서만 41만 명 늘었다. 정부가 세금 주도형 알바 일자리만 고집하느라 벌어진 참사다. 그런데도 보고서에선 마지못해 ‘개선 흐름을 지속하던 일자리·분배 등 측면에서 성과가 제약된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얼버무렸다. 재난지원금을 언급하며 가계소득 확충을 지원했다지만 소득분배 지표가 전년보다 더 악화한 건 슬쩍 넘어간다. 심지어 집값 폭등으로 이어진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해선 아예 언급조차 없다.

제대로 된 경제정책을 세우려면 지난 과오에 대한 반성과 현실에 대한 냉정한 진단이 꼭 필요한 게 아닌가. 그런데 누구 보라고 지금 이 시점에 25쪽 전체를 자화자찬으로 채운 보고서를 내놓는 것인지 매우 우려스럽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 정부의 자화자찬 버릇이야 새삼스럽지 않지만 얼마 남지 않은 기간도 고집스레 실패한 기존 정책을 고수해 국민 삶을 더 어렵게 만들까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