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국의 지재권 면제 계기로 ‘백신 외교’ 전력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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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백악관에서 코로나 대응 관련 발언에 앞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로이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백악관에서 코로나 대응 관련 발언에 앞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로이터]

미국이 지난 5일(현지시간) 코로나 백신 생산 확대를 위한 지식재산권 면제를 지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최종 합의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과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잇따라 면제 지지 입장을 밝힌 가운데 세계무역기구(WTO)도 신속한 협의 방침을 선언해 논의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백신 가뭄 해소 기회, 적극 활용하길 #동맹 복원이 원활한 백신 확보 열쇠

지구촌 대부분의 국가가 백신 가뭄에 시달려 왔지만 미국은 자체 개발한 화이자·모더나 백신의 제조법을 독점한 가운데 지나치게 많은 백신을 비축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반면에 부작용 논란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자체 개발한 백신을 개발도상국들에 대량 지원했다. 글로벌 리더 미국의 ‘백신 이기주의’가 더욱 선명하게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된 이유다. 이제라도 미국이 이런 비판을 수용해 백신 지재권을 풀기로 한 건 만시지탄이나 환영할 일이다.

미국의 결단은 ‘11월 집단면역’이 목표인 우리에겐 큰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은 백신 수급난 해소를 위해서라도 더는 ‘이념 외교’에 얽매이지 말고 동맹 공고화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하는 다자 외교의 틀 속에서 북한 비핵화와 중국 견제 등 현안을 긴밀하게 조율해 민주주의와 인권에 기반을 둔 가치동맹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상호 신뢰가 다져져야만 백신 확보가 원활해질 수 있다는 건 불문가지다.

때마침 문 대통령은 오는 21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다음 달 11일 영국 콘월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두 무대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우선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관심사는 한·미·일 협력이다. 그런 만큼 문 대통령은 지난 5일 런던에서 만난 한·일 외교부 장관이 ‘양국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합의한 사실을 부각하며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G7 회담을 계기로 영국에서 열릴 가능성이 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3국 간 협력 증진’ 합의가 도출될 여건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 핵심 전략인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 4국 협의체) 참여 문제도 ‘백신 외교’에서 비켜갈 수 없는 문제다. 비동맹주의 맹주인 인도는 쿼드에 참여한 결과 미국산 백신 2000만 회분 지원을 따냈지만, 미국의 ‘린치핀’ 동맹이라는 한국은 아직 정부차원의 지원을 받지 못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베트남이 추가로 참여하는 ‘쿼드 플러스’ 구상까지 나온 마당이다. 그런 만큼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코로나19·기후변화 등 쿼드 분과별 협의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쿼드 플러스 참여 의사도 밝힐 필요가 있다. 안보가 핵심인 쿼드에서 우리가 원하는 백신만 얻어내려 한다면 미국과의 신뢰 회복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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