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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다, 특권 중단해야"…벨기에 여론 움직인 한국CCTV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주한 벨기에 대사의 부인 A씨가 서울 용산구의 한 의류매장 직원을 폭행한 CCTV 영상이 벨기에 현지 언론을 통해서도 보도됐다. 현지에서는 "말이 되냐" "창피하다"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이어지면서 비판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A씨는 지난 9일 서울 용산구의 한 의류매장에서 자신이 계산하지 않고 물건을 가져간 것으로 착각한 직원에게 항의하던 중 이를 말리던 다른 직원의 뺨을 때린 혐의를 받는다.

벨기에 공영방송 RTBF가 피터 레스쿠이 대사 부인의 폭행사건을 보도하며 CCTV영상을 첨부했다. 불어 기사 제목은 '주한 벨기에 대사의 아내에게 뺨 맞은 상점 직원: 대사가 입장을 내놓다'다. RTBF 홈페이지 캡처

벨기에 공영방송 RTBF가 피터 레스쿠이 대사 부인의 폭행사건을 보도하며 CCTV영상을 첨부했다. 불어 기사 제목은 '주한 벨기에 대사의 아내에게 뺨 맞은 상점 직원: 대사가 입장을 내놓다'다. RTBF 홈페이지 캡처

벨기에 여론도 "대사 부인 책임져야"

지난 22일 벨기에 공영방송 RTBF는 '주한 벨기에 대사의 아내에게 뺨 맞은 상점 직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기사에는 폭행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이 담겼다. 같은 날 일간지인 르소아 역시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과의 외교 사건'이라며 사건을 보도했다. 기사에는 "한국인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벨기에 대사가 곤경에 빠졌다"는 내용도 적혔다.

벨기에 네티즌들은 대체로 A씨를 비판했다. 사건을 보도한 벨기에 현지 언론 '7sur7'가 공식 SNS에 올린 기사에는 "대사 부인이 됐다면 그것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부끄럽다" "무책임하고, 무례하다.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벨기에인으로 추정되는 한 네티즌은 "정치적인 인물이나 그 가족이 법률을 위반한 경우 '외교적 면책특권'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심각한 사안. 소송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안이 전한 현지 매체의 대사 부인 폭행 사건 보도들. 사진 인스타그램

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안이 전한 현지 매체의 대사 부인 폭행 사건 보도들. 사진 인스타그램

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안도 지난 24일 본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벨기에 사람으로서 창피한 일이 생겼다"고 전했다. 줄리안은 "CCTV가 공개돼 천만다행"이라며 "벨기에 매체 댓글에도 '(A씨가)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벨기에 대사 "부인 조사 받으러 갈 것"

A씨는 27일 오후 3시 기준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남편인 피터 레스쿠이 주한 벨기에 대사가 전날 한국 정부에 "부인이 경찰 조사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한 벨기에 대사관은 지난 22일 "A씨를 대신해 피해자에게 사과드린다"며 "그녀가 한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는 사과문을 공개했다. 주한 벨기에 대사관에 따르면 사건 이후 뇌졸중으로 입원한 A씨는 퇴원해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면책특권 있는데…처벌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경찰 수사를 받더라도 한국에서의 처벌은 어렵다"고 했다. 벨기에 대사의 부인에게는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따라 면책특권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한국 경찰의 소환 요구를 거부할 수 있고 조사를 받아 혐의가 입증되더라도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국제중재 전문인 김갑유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처벌 여부를 떠나 정확히 사실을 조사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밝혀진 수사 결과를 벨기에에 전달해 처벌 등 적절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한 벨기에 대사관. 홈페이지 캡처

주한 벨기에 대사관. 홈페이지 캡처

벨기에 정부가 면책특권 적용을 못 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초동의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범행을 저지른 만큼 면책특권을 주장할 정당성이 떨어진다”며 “면책특권을 포기하면 국내에서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외교 공관 직원들의 면책특권이 박탈당한 사례도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3월 주한미국대사관 직원 부부가 ‘짝퉁’ 가방을 판매한 혐의로 붙잡혔을 때, 미국 정부는 그들의 면책특권을 박탈한 뒤 한국 경찰의 조사를 받도록 했다. 지난 2016년에도 공무 수행 중인 경찰을 밀치고 순찰차를 걷어찬 뉴질랜드 외교관이 본국으로부터 면책특권을 박탈당했다.

경찰은 외교부를 통해 A씨의 출석을 요청했다. 27일 경찰 관계자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피의자 출석이 필요하다"며 "'주한 외국 공관원 범죄 표준절차'에 맞춰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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