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원치 않은 커밍아웃으로 고통"…김세희 소설 '아웃팅'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세희 작가의 소설로 아웃팅을 당했다는 주장의 트위터.

김세희 작가의 소설로 아웃팅을 당했다는 주장의 트위터.

“소설 때문에 원치 않는 방식으로 준비되지 않은 커밍아웃을 해야했다.”
“현실에 기반했더라도 실존인물이 아니고 픽션이다.”

김세희 퀴어소설 『항구의 사랑』논란 #트위터 '아웃팅' 주장에 작가 측 강경 대응

퀴어(성소수자) 소설의 등장인물 아웃팅(타인이 특정인의 성적 정체성을 공개하는 것)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23일 ‘별이, H, 칼머리’라는 이름의 트위터 계정에는 자신이 김세희 작가의 장편 『항구의 사랑』(민음사)의 ‘인희’이자 ‘H’, 단편 ‘대답을 듣고 싶어’(문학동네)의 ‘별이’라는 주장이 올라왔다. 두 작품 모두 2019년 발표됐다.

그는 “김세희 소설가와 18년간 친구였던 저는 필요에 따라 주요 캐릭터이자 주변 캐릭터로 부분부분 토막 내어져 알뜰하게 사용됐다”라며 “‘대답을 듣고 싶어’에는 토씨 하나 바꾸지 않은 사적 대화 및 에피소드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실려 있었다”고 했다. 퀴어 청소년인 인희, 주인공의 동료 H, 화자의 고등학교 친구인 별이로 등으로 등장하면서 그는 여러 피해를 겪었다고 주장했다. “소설을 읽은 주변인들이 성 정체성과 관련한 사적인 질문을 해왔고, ‘김세희와 키스한 게 사실이냐’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원치 않는 방식으로 준비되지 않은 커밍아웃을 해야했고 이로 인해 차마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글쓴이는 또 “불쾌함과 배신감을 느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두려움과 공포”라고 했다.

『항구의 사랑』은 2000년대 초 목포의 10대 여학생들 사이 사랑을 그렸다. 주인공 준희, 준희가 사랑하는 선배 민선, 연예인 팬픽을 쓰며 남자처럼 행동하는 인희, 준희가 성인이 돼 만나게 된 H가 등장한다. 여학생 사이의 사랑을 경험하고 대학에 입학한 준희는 캠퍼스에 찾아온 인희에게 그 시절을 부인한다. 단편 '대답을 듣고 싶어'에서는 친구 별의 어머니 죽음을 계기로 화자가 기억을 되짚는다. 남성 사이 사랑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퀴어 소설의 흐름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등장시킨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김세희 작가는 2015년 등단했고 2018년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2019년 신동엽 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세희의 2019년 장편 '항구의 사랑'.

김세희의 2019년 장편 '항구의 사랑'.

김세희 작가는 트위터에서 나온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지평을 통해 “‘항구의 사랑’과 ‘대답을 듣고 싶어’는 모두 소설이며 허구”라며 “소설 속 묘사로 아우팅을 주장하는 이를 연상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지평 측은 또 “현실에 기반했더라도 실존인물이 아니며, 일화와 대사 중 한 두개를 발췌하여 보편적인 정형성을 드러내는 요소를 골라 특정인의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들은 “분신과 같은 작품에 대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공격이 공개적으로 제기된 만큼 명예를 걸고 진실을 밝히며 대처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또 “진실이 아닌 허위에 기댄 위법한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부득이 법적 조치도 취하고자 한다”고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성소수자가 퀴어 소설로 아웃팅 당했다는 주장은 지난해에도 나왔다. 지난해 7월엔 퀴어 소설을 쓰는 김봉곤 작가가 카톡 내용 등 사생활을 동의없이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동성간 사랑을 그린 ‘그런 생활’에 등장하는 여성이 본인이라는 지적과, ‘여름, 스피드’에 나오는 주인공이 자신이며 아웃팅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오자 김 작가는 ‘그런 생활’로 받은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반납했다.

당시 문학동네는 이러한 주장이 나온 초반에 “서로의 주장이 엇갈린다”며 젊은작가상 수상 취소를 결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젊은작가상 반납을 받아들이면서 “처음부터 피해자를 중심에 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반성한다”고 알렸다. 문학동네는 이번 사안에 대해서도 빠르게 조치했다. ‘대답을 듣고 싶어’가 수록된 계간지 2019년 여름호를 아웃팅 주장을 알게된 후 판매 중지했다.

하지만 민음사 측은 25일 트위터에 “별이 님과 작가 사이에 입장 차이가 확연함을 확인했다”며 “피해 사실에 대한 내용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가와 작품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12월 피해에 대한 내용증명을 받은 후 법률 위반 여부 판단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과 설명을 요청했으며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퀴어소설 아웃팅 관련 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