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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97% 줄어도 '감원 No'···되레 직원에 1억 선물 주는 CE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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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타격을 정면으로 받은 기업이 있다. 일 년 사이 매출은 30%, 영업이익은 97%가 줄었다. 왠만한 기업이라면 당장 구조조정 얘기가 나올 법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기업의 대응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며 직원들을 다독였다. 기업의 힘은 결국 직원들한테서 나온다는 믿음에서다. 재계 60위(2019년 기준), 애경그룹의 이야기다.

이석주 AK홀딩스 대표 단독인터뷰 #"기업이 어려울수록 가장 값진 자산은 직원" #"사람 줄이면 남은 직원도 업무 집중 힘들어" #"기업의 지속가능한 힘은 결국 직원한테 나와"

이석주 AK홀딩스 대표가 19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제주항공의 상징색인 오렌지색 넥타이를 매고 인터뷰에 응했다. 김성룡 기자

이석주 AK홀딩스 대표가 19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제주항공의 상징색인 오렌지색 넥타이를 매고 인터뷰에 응했다. 김성룡 기자

애경그룹 지주회사인 이석주(52ㆍ사진) AK홀딩스 대표를 서울 마포구 동교동애경타워에서 지난 19일 만났다.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했다. 보스턴컨설팅을 거쳐 지난 2008년 애경그룹에 합류했다. 지난해까지는 그룹 주력인 제주항공의 대표를 지냈다.

이 대표는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항공과 화학, 유통과 소비재 등 4개 사업 분야 중 가장 규모가 컸던 항공에서만 전년보다 매출이 1조원 넘게 줄고 적자는 3000억원 가까이 늘었다는 것이다. 실제 애경그룹은 긴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2019년 5조6681억원이었던 그룹 전체 매출은 지난해 3조9654억원으로 30%가 줄었다. 영업이익은 3926억원에서 108억원으로 97%가 감소했다.

"애경은 위기극복 DNA 있어"

애경그룹의 최악의 경영실적에도 적극적인 해고 회피 노력은 안팎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 대표는 “어려울 때 일수록 되새기는 게 결국 기업에게 가장 값진 자산은 직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기업이 어렵다고 사람을 줄인다면 남아있는 직원들 역시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실제 제주항공과 자회사인 JAS의 경우 2020년 3933명이던 직원 수는 지난달 말 현재 3528명으로 405명이 줄어드는 데 그쳤다. 직원수가 줄어든 것은 순전히 자발적 이직에 따른 감소분이고, 직원들은 순환 휴직 등으로 고통을 나누고 있다. 이 대표는 “자발적인 이직을 선택하게 된 분들에 대해서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애경그룹 임직원 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애경그룹 임직원 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애경그룹이 위기를 맞은건 이번뿐 만이 아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IMF)와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유동성 위기가 있었다. 특히 2000년대 후반에는 면세점 사업을 롯데그룹에 넘기고 여기서 확보한 실탄으로 제주항공을 살려내기도 했다. 이후 제주항공은 저비용 항공사(LCC) 중 1위로 성장했다. 이후 제주항공은 2017년과 2018년 2년 연속으로 1000억 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화학·소비재가 그룹 버팀목 

애경그룹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항공과 달리 화학과 소비재 사업은 견조한 실적을 내고 있다. 애경유화 등 화학계열사 4개사에서 지난해 975억원 영업이익을 거뒀다. 소비재 중심의 애경산업은 226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위생 전문 브랜드 랩신(LABCCIN)의 성공과 미국과 중국, 동남아 등 해외시장을 공략한 결과다. 이를 바탕으로 애경그룹은 지주회사인 AK홀딩스의 주도로 코로나19의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다. 그는 “각 계열사에 최대한 협조와 희생에 대한 동의를 구했다”며 “그룹 전체의 단합을 통해 제주항공 등 일부 계열사의 위기를 극복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애경그룹의 대표 화학계열사인 애경유화는 화학산업 기초 소재인 무수프탈산과 가소제 등 분야에서 모두 국내 1위(세계 4위)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제주항공 직원들 역시 유통 부문의 ‘라이브 방송(라방)’에 참여하는 등 그룹내 협력을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항공업계 역시 조금씩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 대표는 “미국은 현재 국내선의 75%가량이 복원됐다”며 “제주항공도 국제선만 어느 정도 되살아난다면 금세 경쟁력을 뒤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스타항공 인수전 참여 안해"

제주항공은 현재 PSS(Passenger Service System)같은 IT 기반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코로나19 속의 위기상황이지만 글로벌 항공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IT 기반 서비스와 안전운항 체계 등을 점검하는 등 기본기를 다잡고 있다. 하지만 무리하게 외연을 넓힐 생각은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인수를 추진했던 또 다른 LCC인 이스타항공과 관련 ”도의상 다시 인수전에 참여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이석주 AK홀딩스 대표가 19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제주항공의 상징색인 오렌지색 넥타이를 매고 인터뷰에 응했다. 짙은 푸른색 양복은 애경그룹의 상징색이다. 김성룡 기자

이석주 AK홀딩스 대표가 19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제주항공의 상징색인 오렌지색 넥타이를 매고 인터뷰에 응했다. 짙은 푸른색 양복은 애경그룹의 상징색이다. 김성룡 기자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유통부문과 관련해서는 ‘라이프스타일 제안’이란 컨셉트로 소비자에 다가서고 있다. 이 대표는 “고객이 우리 매장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했다. 주력 점포인 AK플라자 분당점 1층에 인기 와인 브랜드 숍과 카페 등을 만들었다. 백화점으로선 이례적으로 1층에 유명 가전업체의 체험 매장도 꾸몄다. 애플 스토어도 입점시킨다는 계획이다. 20·30 세대의 젊은 소비자가 오프라인 매장으로 지속해서 흘러들어오도록 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직원들한테 한해 1억원 어치 선물 

이 대표는 그룹 내에서 직원들에게 먼저 다가서고 성격이 소탈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기프티콘 같은 소소한 선물을 자주하다 보니, 직원들에게 주는 선물값으로만 한 해 5000만원~1억원을 쓴다고 했다. 그는 “애경이 지금은 힘들지만 사업부문 별로 꾸준히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 직원들과 끝까지 갈 것"이라며 "기업이 영속하는 힘은 결국 직원들에게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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