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승진 때 군 경력 배제 확산…젠더갈등, 남남갈등으로 번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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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군 경력 배제 확산

군 경력 배제 확산

기획재정부는 1월 모든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직원 승진심사 자격 요건에 군 복무기간을 포함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따라 일부 공공기관이 군 경력을 승진에 필요한 최소 근무 연한에서 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자 청와대 국민청원 등에서 “군필 남성을 역차별한다”며 “군 경력을 인정해 달라”는 주장이 터져나왔다. 공공기관에서 직원을 승진시킬 때, 군 경력을 인정해야 할지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군 경력 인정 340곳 중 15곳뿐 #청와대에 “군복무 배려” 잇단 청원 #“연차 높은 남자 선배만 혜택봐” #저연차 남성 직원들 불만 커져

25일 복수의 공공기관에 따르면 승진심사 지원 자격에 군 복무기간을 포함해 계산하는 공공기관은 전체 340여 개 중 15개뿐이다. 정부 부처는 물론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군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최근 한국전력공사는 군 경력을 승진 요건에서 빼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수력원자력도 마찬가지다. 대신 군필자의 승진시험 응시 자격을 1년 앞당겨 주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공기업은 군필 직원의 급여에선 그대로 군 경력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같은 연차라도 군필 직원에게 더 많은 월급을 준다는 이야기다.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기관 등은 군필자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군 복무기간을 근무 경력에 포함할 수 있다.

한전과 한수원이 군 경력 배제를 검토하자 군필자가 미필자보다 제대 후 정년까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짧기 때문에 이를 인정해야 공평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민청원 청원인은 “1년8개월 동안 국가를 위해 공무원 신분으로 봉사하고 돌아와 다른 미필자보다 사회에서 일하는 기간이 줄어든다는 것이 부당하다”며 “1년8개월을 군인 공무원으로서 근속한 경력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은 결국 군필자가 미필자보다 최소한 1년8개월 동안 공공기관에서 근무할 기회를 박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일부 직장에선 내부적으로 군 경험을 근무 경력으로 인정해 줬다. 그러나 이런 계산법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남녀고용평등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해석이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사업주가 승진에서 남녀를 차별할 수 없다. 같은 조건으로 모집·채용했더라도 여성이 군 복무를 하지 않아 군필 남성보다 2년 늦게 승진하면 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

국회에선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 등 여야 할 것 없이 공공기관 승진에 군 경력을 포함하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고 있다. 전 의원은 “(기재부의 가이드라인은) 아무런 의견 조율 없이 이뤄진 부당한 행정 집행”이라고 주장했다.

청원인도 “정부는 군필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정년 연장’ 또는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공공기관 직원은 “이미 군필 혜택을 받아 승진한 고연차 남성 직원과 앞으로 혜택이 사라지는 저연차 직원 사이에 불평등이 생기는 것 아니냐”며 “성차별이라기보다 남성 직원 간 갈등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조직 내 보상체계 등의 문제를 조직화해 표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군 경력 인정 논란 역시 오래된 관행과 제도가 개선되는 과정에서 손해를 본다고 느끼는 집단의 불만이 확대된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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