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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 '오탈자' 1000명 돌파…"직장암에 기저귀 차고 시험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잘못 쓰거나 빠뜨린 글자를 '오탈자' 라고 부른다. 몇 년 전부터는 글자가 아닌 사람을 '오탈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들이 무언가 잘못을 했거나 빠뜨려선 그런 건 아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을 뿐이다.

'오탈자'는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 졸업 후 5년 안에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이들을 부르는 말이다. 2016년(5회) 변호사시험 이후 108명은 변호사 시험 응시 기회를 완전히 잃었다. 2019년(8회)에는 이런 이들이 처음으로 200명이 넘었다. 지난해까지 총 891명의 '오탈자'가 생겼다.

일러스트=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일러스트=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시민단체 등은 올해에도 200명이 넘는 '오탈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오탈자' 1000명의 시대로 접어든 셈이다. 시간이 지나면 2000명, 3000명이 된다. 이들은 법조인을 꿈꾸며 3년의 세월과 상당한 금전을 들였지만 남은 것은 법학 석사와 '오탈자' 낙인뿐이다.

'오탈자' 이야기…"직장암에 뇌경색"  

50대 김모씨는 명문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시험을 포기한 뒤 취업했다. 2009년 다시 법조인의 꿈을 안고 사시를 준비하다가 2012년(4기) 로스쿨에 입학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인정받아 학비는 장학금을 받았다. 가정이 있는 그에게는 빚이 있었고 돈을 벌기 위해 두 번 휴학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2017년 첫 시험, 떨어졌다. 이후 일을 병행하면서 수험 준비를 했지만 두 번째 시험에서도 떨어졌다. 이후 직장암 선고를 받는다. 그때 '건강 문제로 내가 오탈자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장 출혈과 설사가 심해 치료에 집중하면서 기저귀를 차고 시험을 봤지만 4번째 시험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2020년에는 뇌경색 진단을 받았고, 올해 시험에서는 천식과 코로나 검사 등으로 시험을 포기했다.

김씨는 "입대 외 다른 사유로는 응시 자격 연장이 안 되는 극단적인 제한은 전 세계에서 찾기 어렵다. 일본은 예비시험이나 재입학 등 간접적인 구제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평생 시험 못 보는 건 가혹"

응시 기회를 모두 소진한 이석원(39)씨도 초시에서 떨어진 뒤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느라 수험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덧 5번의 응시 기회를 모두 소진했다. 이씨는 "오탈제도는 평생 시험응시를 금지하는 제도다. 부정행위를 하거나 형벌을 받으면 일정 기간 응시를 못 하지만 시험을 평생 못 보게 하는 경우는 없다"면서 "어떤 예외 사유도 허락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응시를 금지하는 것은 가혹하고 부당하다"고 말했다.

지난 2일 또 '헌법소원' 

[중앙포토]

[중앙포토]

지난 2일 법학전문대학원원우회와 시민단체 등은 변호사시험법 7조에 대한 헌법소원을 다시 청구했다. 이들은 중병 치료나 임신 등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로 피해를 본 이들이 많다고 주장한다.

앞서 지난해 9월 헌재는 전원일치 의견으로 5년 내 5회로 제한한 변호사시험법 7조 1항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2016년과 2018년에도 같았다. 헌재는 앞선 두 선례를 바꿔야 할 사정이 바뀌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변시에 무제한 응시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력 낭비, 응시인원 누적으로 인한 시험합격률 저하 등을 방지하고자 하는 해당 조항 입법목적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병역의무 이행만을 응시기회제한의 예외로 인정하는 변호사시험법 7조 2항이 평등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해 4인의 재판관이 평등권 침해로 반대의견을 냈으나 위헌정족수에 이르지 못해 기각됐다. 청구인들은 여기에 희망을 걸고 있다.

"언젠가 위헌으로 나올 것"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청사. 뉴시스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청사. 뉴시스

헌법소원을 대리하는 류하경 변호사는 "자격이 되는 사람은 다 뽑아야 하는 것이 입법 취지다. 우리나라는 OECD 기준 변호사 숫자가 결코 많은 편이 아니다 "지난번과 같은 내용으로 헌법소원을 냈다. 노예제 폐지처럼 오탈자 규정도 언젠가 위헌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규정"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오탈제를 없애고 변시가 자격시험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변호사단체는 "현재 시장도 포화상태라며 연간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올해 합격자 발표를 기준으로 석사학위 취득자를 정리해 5월 말쯤 '오탈자'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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