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과로는 불충분하다" 네티즌 90%

중앙일보

입력

MBC호(號)가 흔들리고 있다.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의 논문이 허위라고 주장해 온 PD수첩팀의 협박.회유성 취재가 확인된 4일 이후다. MBC 구성원들은 "창사 이래 최고의 위기가 닥쳤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번 파문은 우선 MBC를 전통적으로 지지해 온 네티즌들까지 적으로 돌려세웠다. 인터넷 공간에서 MBC는 '공공의 적'이다. 방송사 홈페이지엔 비난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가 5일 실시한 'MBC 측의 사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란 설문조사에선 90% 이상의 네티즌들이 "불충분하다"고 답했다. '다음'의 '네티즌 청원'난에 올라온 "MBC를 폐쇄시켜 달라"는 청원에도 5일 현재 4만 명 이상이 서명을 했다.

시민단체들의 비판 성명도 잇따르고 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5일 "MBC는 취재 윤리 위반 행위의 진상을 명확히 파악하고 당사자에게 응분의 책임을 묻는 한편 강도 높은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인권센터도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방패 삼아 비윤리적.불법 취재를 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PD저널리즘에 대한 학계의 비판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연세대 윤영철(신문방송학) 교수는 "PD저널리즘에서 가장 위험한 요소는 큰 그림을 그려놓고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이라며 "빡빡한 취재 일정을 짜 놓다 보니 결론을 맞추기 위해 몰래카메라나 유도 질문 등이 동원될 소지가 높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이날 오후 4시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사안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한때 최문순 MBC 사장이 '사의 표명'을 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방문진은 MBC 주식의 70%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MBC에 대한 경영 감독 권한이 있다. 간담회는 최 사장이 현안 보고를 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그 파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이날 간담회에선 사장 거취에 관한 민감한 얘기까지 논의됐다. 한 이사는 "사장 퇴진을 포함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얘기가 오갔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 간담회 분위기는 심각했다. 문 밖에서 가끔 고성이 들릴 정도로 격론도 벌어졌다. 일부 이사는 "MBC 최고 경영자에게 대주주로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야 되는 것 아니냐" "PD수첩이 국민 여론을 무시했다"는 등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반면 "끝까지 사실을 추구해야 하는데 너무 일찍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이사는 "문제 제기는 많았지만 이사들의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회의가 마무리된 뒤 최 사장은 굳은 표정으로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늘 여유가 넘치던 모습과는 달랐다.

이날 간담회에선 특별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방문진에서 사장 거취에 관한 얘기까지 나온 만큼 최 사장으로선 큰 부담을 안은 셈이 됐다. "최 사장이 노조위원장 출신이 아니었다면 노조가 (계속되는 악재에 대해) 사장 퇴진 운동을 벌였을 것"이라는 말이 MBC 내부에서 나오는 판이다.

이래저래 궁지에 몰린 MBC는 탈출구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4일에 이어 5일에도 '뉴스데스크'를 통해 사과성 기사를 내보냈다. 6일로 예정된 PD수첩 방영은 아예 포기했다. 대신 다큐멘터리를 재방송한다. PD수첩은 13일 방송을 재개하되 '황우석 2탄'은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 진행자(최승호 책임PD) 교체도 검토 중이다. PD수첩 관계자들에 대한 징계 절차도 조만간 시작할 예정이다. 또 사실상 PD수첩의 후속 보도는 "물 건너간 게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취재 과정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에서 그 내용물을 믿으라고 내놓을 수 없다는 얘기다.

PD수첩팀은 아직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최승호 책임PD는 이날 기자와의 처음 만남에서 "회사가 함구령을 내렸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만났을 때에야 겨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김선종 연구원 등의 진술은 진실을 찾아 나가는 과정의 중간 단계에 해당한다"며 "결론은 실험 결과"라고 말했다. 취재 내용에 대해선 여전히 확신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방송을 강행하겠다는 강한 의지는 엿보이지 않았다. 그는 "진실은 보도돼야 한다"고 말했지만 곧바로 "그러나 회사가 어려워서…"라고 말을 끊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