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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0'에 코로나까지…공기업, 올해 40% 덜 뽑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주요 공기업들이 올해 채용 규모를 크게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영 악화, 기관 내홍 등의 영향이다.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총대를 멘 후유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4일 기획재정부와 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알리오) 등에 따르면 36개 주요 공기업(시장형 16개, 준시장형 20개)은 올해 정규직 5019명, 무기계약직 70명 등 총 5089명의 직원 채용을 계획 중이다. 지난해 이들의 채용 규모 총 8350명(정규직 7638명, 무기계약직 712명)과 비교하면 39.1% 줄었다. 향후 상황에 따라 실제 채용 인원은 늘어날 수 있지만, 지난해보다 채용 규모가 감소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는 코로나19 타격과 내부 사정 등으로 채용을 줄이거나 채용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공기업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공무원 준비 학원에서 한 학생이 게시판 앞을 지나는 모습. 뉴스1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공무원 준비 학원에서 한 학생이 게시판 앞을 지나는 모습. 뉴스1

코로나19로 경마 경기가 중단된 한국마사회는 올해 채용 자체가 불투명하다. 마사회는 지난해 사상 첫 영업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약 2000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기존 직원의 급여를 줄이는 마당에 새로 직원을 뽑기에는 부담이 크다.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카지노를 운영하는 ‘그랜드코리아레저’ 역시 비슷한 이유로 올해 채용이 여의치 않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올해 지난해(70명)의 절반 수준인 정규직 40명을 채용할 예정이다. 정남희 기획재정부 재무경영과장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간하는 ‘공공경제 2020년 가을호’에 기고한 글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ㆍ한국공항공사ㆍ한국마사회 등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감소에 따른 타격이 큰 기관들은 총 8조3000억원의 수입이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경영 여건이 악화한 한국석유공사도 올해 채용 계획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휩싸인 LH는 채용 과정이 사실상 올스톱됐다. 당초에는 3∼4월 채용 공고를 내고 상반기 채용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LH 혁신 방안 발표를 앞둔 상황에서 신규 채용을 진행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광해관리공단과의 통합을 앞둔 한국광물자원공사도 통합 전에 신입 직원이나 인턴을 채용하는 게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따라 '채용 절벽'이 현실화했다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무리한 정규직 전환으로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새로운 인력을 채용할 여력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실제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3년간 가장 많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한전은 올해 110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최근 3년 평균인 1700명에 비해 35% 정도 줄어든 규모다. 역시 정규직 전환에 적극적인 한국철도공사도 올해 1400명을 채용할 계획인데, 이는 최근 3년간 신규 채용 규모(2700명)의 절반 수준이다.

공공기관 청년 신규채용 비율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공공기관 청년 신규채용 비율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미 지난해엔 공기업의 청년 고용 실적이 감소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고용의무제 적용 대상 공공기관(지방공기업 포함) 436곳의 청년(만 15∼34세) 신규 채용 인원은 2만2798명으로, 전체 정원의 5.9%에 그쳤다. 한해 전과 비교해 채용 규모는 5891명 감소했고, 비율도 7.4%에서 1.5%포인트 낮아졌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에 따른 경영 여건 악화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며 “무리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공기업의 비용 부담을 늘리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신규 채용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는 공기업 채용 감소와 정규진 전환 정책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기업의 정규직 전환은 기존에 일하시는 분들의 고용형태를 전환하는 것”이라며 “공기업의 신규 채용 규모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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