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작년 코스피 상장사 순이익 18% 증가…마른 수건 쥐어짠 '불황형 흑자'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들의 매출액은 1년 전보다 줄었지만, 순이익은 20% 가까이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대형 악재에도 하반기부터 세계 경기가 회복되면서 수출·내수가 살아난 덕분이다. 그러나 '마른 수건 쥐어짜기'식 긴축을 통해 수익성을 높인 '불황형 흑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 중 음식료품 업종의 순이익은 전년 대비 130% 넘게 증가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 중 음식료품 업종의 순이익은 전년 대비 130% 넘게 증가했다. 연합뉴스

매출은 3.7% 감소…원가 절감 등으로 수익성만 개선

4일 한국거래소가 코스피 시장에 상장된 12월 결산법인 597곳의 실적(연결 기준)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매출액은 1961조763억원으로 1년 전보다 3.7% 감소했다. 반면 회사가 실제로 번 돈에 해당하는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늘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3.2% 증가한 107조4072억원, 세금 등 각종 비용을 뺀 순이익은 18.2% 늘어난 63조4533억원을 기록했다.

수익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은 2019년 2.64%에서 지난해 3.24%로 0.6%포인트 높아졌다. 기업들이 지난해 1만원어치를 팔아 324원을 남겼단 뜻이다.

코로나19로 외형은 쪼그라든 데 반해 국제 유가 하락에 따른 원가 절감과 긴축 경영 등으로 이익만 늘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명지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비용을 절감해 수익성은 다소 좋아졌지만, 매출은 정체된 '불황형 흑자' 상태"라고 말했다.

2020년 코스피 상장사 실적.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2020년 코스피 상장사 실적.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3.2% 늘어난 상장사 영업익, 삼성전자 빼면 마이너스

실적 개선을 이끈 주역은 '반도체 양대 공룡'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특히 코스피 상장사 전체 매출의 12.08%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공이 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6조4078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1년 전보다 21.5% 늘었다.

뒤집어 보면 '삼성전자 착시'를 걷어낼 경우 상장사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칠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삼성전자를 뺀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 매출(1724조2693억원)과 영업이익(71조4133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5%, 6.4% 줄었다. 매출 감소 폭은 커지고, 영업이익 증가율은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이다. 그나마 순이익(37조455억원)은 15.9% 늘었다.

2020년 코스피 상장사 순이익 상위 5개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20년 코스피 상장사 순이익 상위 5개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음식료·IT 웃고 기계·화학 울상

업종별로는 전체 17개 중 7개 업종의 순이익이 늘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음식료품이다. 지난해 순이익은 1년 전보다 132.8% 급증했다. 코로나19로 외식 대신 집에서 식사하는 '집밥족'이 늘어난 영향이다. 의료정밀(120.2%)과 의약품(61.9%), 전기·전자(56.9%)의 순이익 증가 폭도 컸다. 반면 기계(-93.2%), 화학(-59.4%), 운수장비(-57.6%), 철강금속(-38.6%) 등은 순익이 급감했다.

손익계산 등이 일반 제조업과 달라 별도로 집계한 금융업에서는 은행과 증권사의 희비가 엇갈렸다. 증권과 보험업 순이익이 1년 전보다 각각 31%, 35% 늘어난 데 비해 은행업은 4.7% 줄어들었다.

2020년 코스피 상장사 순이익 하위 5개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20년 코스피 상장사 순이익 하위 5개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올해 수출 기업 실적 견인, 비제조업도 회복"

코스닥 상장사는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이 모두 늘었다. 코스닥 상장사 1003곳의 지난해 매출액은 197조원으로 전년 대비 3.4% 증가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12.1%, 4% 늘었다.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은 2.37%였다. 1년 전보다 0.01%포인트 높아졌다.

증권가에선 올해 국내 상장사들의 실적이 크게 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들의 올해 영업이익은 185조원대로 추정된다. 지난해보다 70% 넘게 늘어난 수치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삼성전자를 필두로 수출 기업이 실적을 이끌고, 지난해 코로나19로 부진했던 유통·서비스업 등 비제조업 기업이 조금씩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업종별 실적 양극화는 완화될 것"이라면서도 "항공·여행업은 이른 시일 내 나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