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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아나폴리스 vs 中 샤먼 ‘쌍끌이’ 협의, 韓 ‘진실의 순간’ 예고편 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주말인 3일 미국과 중국에서 외교 ‘빅 이벤트’가 사실상 동시에 열린다. 한ㆍ미ㆍ일 안보실장 협의와 한ㆍ중 외교장관회담이다. 미ㆍ중이 패권 경쟁을 벌이며 서로 아군을 늘리기 위해 여념이 없는 가운데 양쪽 협의의 공통분모는 한국이다. 한국이 머지않아 직면할 미ㆍ중 간 ‘진실의 순간’의 예고편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 간 3국 안보실장협의는 2일(현지시간) 미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다. 한국 시간으로는 2일 저녁부터 3일 아침까지다.

한ㆍ중 정상회담은 3일 오전 중국 푸젠성 샤먼(廈門)에서 열린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업무오찬까지 함께 한다. 한국시간으로는 오후까지 이어진다.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2일 저녁부터 3일 오후까지 ‘쌍끌이 고위급 외교 협의’가 연이어 이뤄지는 셈이다.

미ㆍ중, 서로 한국 끌어당기는 구도

주목할 것은 한ㆍ미ㆍ중을 중심으로 주요국 고위급 인사들이 협의를 이어가는 일련의 양상이다. 3월16일 미ㆍ일 외교ㆍ국방(2+2) 장관회의(일본 도쿄)→18일 한ㆍ미 2+2 장관 회의(서울)→19일 미ㆍ중 고위급 협의(미국 알래스카)→22일 중ㆍ러 외교장관 회담(중국 구이린)→25일 한ㆍ러 외교장관 회담(서울)에 이어 미국에선 한ㆍ미ㆍ일이, 중국에선 한ㆍ중이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이에 더해 이달 중 한ㆍ미ㆍ일 외교장관회의도 추진되고 있다.
 동선만 보더라도 미국은 한ㆍ미ㆍ일 안보 공조 체제를 강화하고, 중국은 이에 맞서 러시아와 함께 한국을 더 가깝게 끌어오려는 구도가 뚜렷하다. 이번 한ㆍ미ㆍ일 안보실장 협의만 하더라도 의제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리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에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함께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에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함께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1일(현지시간) 언론 브리핑을 자청해 이번 협의에 대해 “우리는 북한 문제에 더해 다른 전략적ㆍ경제적 목표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이며, 논의를 기술 문제까지 확장할 것”이라며 “여기에는 반도체, 공급망(supply chain), 바이오기술 등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런 민감한 공급망을 계속 안전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려 하고, 관련 규범과 기준에 대한 향후 논의를 이어가자고 할 것”이라면서다.

양쪽 모두 ‘첨단기술 협력’ 요청 가능성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과 함께 글로벌 공급망 등의 질서를 다시 규정하고, 중국이 이에 순응하지 않으면 배제해버릴 수도 있다는 기조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미ㆍ중이 가장 첨예하게 맞붙는 첨단 기술 분야를 한국, 일본과 함께 다루겠다고 예고한 것이다.
중국 역시 한국에 비슷한 협력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 왕이 위원은 지난해 11월 방한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한ㆍ중 무역협력 계획 2021~2025’를 조속히 제정해 하이테크 기술ㆍ산업 협력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사실은 한국 외교부 발표에는 없었지만, 중국 외교부가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러시아 외교장관회담에 앞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러시아 외교장관회담에 앞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외교가에선 쌍끌이 협의 뒤 각기 내놓을 결과물의 수위에 따라 미ㆍ중 사이 한국의 현위치가 확인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ㆍ미ㆍ일 중 한국이 ‘약한 고리’라는 우려 섞인 가설이 기정사실처럼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ㆍ일, 2014년 ‘헤이그 어게인’ 될까  

이번 한ㆍ미ㆍ일 안보실장 협의에서는 북핵 문제와 미ㆍ중 간 갈등 이슈 외에 한ㆍ일 관계 개선 역시 중요하게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1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3국 안보실장 협의 관련 질문에“이번 협의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한ㆍ일 방문에 뒤이은 것으로, 우리는 미국과 한국 및 미국과 일본 간 긴밀한 양자 관계뿐 아니라 한ㆍ미ㆍ일 간 긴밀한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imperative) 점을 매우 강조했다”고 답했다.
미국은 한ㆍ일 사이에 개입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물밑에서 양국 간 갈등 해결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한ㆍ일 관계 개선을 위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게 이번 3국 협의에 참여하는 서훈 실장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2014년 3월 한미일 3자회담을 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 미국 대사관저에 도착한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보는 가운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2014년 3월 한미일 3자회담을 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 미국 대사관저에 도착한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보는 가운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와 관련, 이번에 ‘2014년 헤이그 효과’가 재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만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하고, 취임 1년이 넘도록 한ㆍ일 정상회담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두 정상을 끌어다 한자리에 앉힌 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었다. 2014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ㆍ미ㆍ일 정상회의를 개최한 것. 그 결과 한ㆍ일 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국장급 협의도 시작됐다.
이번 안보실장 협의에서도 이같은 한ㆍ일 관계 변화의 단초가 마련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일각에선 트럼프 행정부 들어 사실상 중단된 한ㆍ미ㆍ일 외교 차관 협의체의 부활을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한한령 해제, 시 주석 방한 매듭짓나

샤먼 한ㆍ중 외교장관 회담의 관전 포인트는 북핵 협력과 관련한 공감대의 수위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배치와 관련해 아직 끝나지 않은 중국의 보복 조치 해제 여부다. 한국은 꾸준히 한한령 해제 등 사드 보복의 완전한 제거를 촉구해왔지만, 중국은 전향적으로 응하지 않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 장관은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 겸 국무위원과 취임 후 첫 회담을 위해 서울공항에서 정부 전용기를 타고 중국 푸젠성 샤먼(廈門)으로 출국한다. 연합뉴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 장관은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 겸 국무위원과 취임 후 첫 회담을 위해 서울공항에서 정부 전용기를 타고 중국 푸젠성 샤먼(廈門)으로 출국한다.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과 관련, 구체적 윤곽이 나올지도 관심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방중한 이후 정부는 계속해서 시 주석을 초청하고 있지만, 아직도 성사되지 않았을 뿐더러 중국 측은 공식 협의 결과 발표에 이를 포함한 적도 없다.
정 장관의 첫 출장지가 미국이 아닌 중국이라는 점, 회담 장소가 대만 코앞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이번 회담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도출하지 못하면 정부가 도리어 중국의 ‘한국 견인 작전’에 말려드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외교가에선 나온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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