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지난 빵 주더니"…사장의 돌변, 알바 절도범 신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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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대구 북구 엑스코(EXCO)에서 열린 '대구 베이커리 & 카페쇼(D-CAFE2021)'.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뉴스1

12일 대구 북구 엑스코(EXCO)에서 열린 '대구 베이커리 & 카페쇼(D-CAFE2021)'.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뉴스1

지난 22일 대학교 1학년생인 A씨(20)는 늦잠을 자다 휴대전화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깼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의 발신자는 경찰관이었다. 그는 “19일 경찰서에 고소장이 접수됐다. 절도죄로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출석이 가능하냐”고 했다. ‘절도죄’라는 말에 잠이 확 달아났다. 고소인은 그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의 사장이었다.

고소전으로 이어지는 알바 갈등

경찰과 A씨 등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24일부터 대구에 있는 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카페 사장 윤모씨로부터 고지받은 월급 날짜는 매달 15일이었다. 그런데, 17일까지 급여가 들어오지 않자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돌아온 답변은 “2월+3월 교육=4월 급여날”이었다. 교육 기간인 만큼 2,3월 해당 급여를 4월에 주겠다는 취지였다.

A씨가 한 달여 근무하는 동안 듣지 못한 얘기였다고 한다. A씨는 “전 달 급여는 주는 게 맞지 않느냐. 수습 기간에 최저시급의 90%만 지급하겠다는 것도 최근에 말해줬다. 더는 일하기 힘들 것 같다”고 윤씨에게 말했다. 그러자 윤씨는 “출근을 안 해서 매장에 피해가 있으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지난 17일 알바생 A씨와 사장 윤씨가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 [A씨 제공]

지난 17일 알바생 A씨와 사장 윤씨가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 [A씨 제공]

A씨는 17일 이후로 카페에 출근하지 않았다. 그 뒤로 윤씨로부터 온 연락은 없었다. 대신 경찰로부터 절도죄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대구 달서경찰서에 접수된 고소장에는 “A씨가 카페에 보관된 직원 식자재를 가져갔다”고 기재됐다. 윤씨가 또 다른 곳에서 운영하는 빵집에서 가져온 빵을 냉장고에 넣어놨는데 이를 A씨가 집에 가져갔다는 내용이었다.

"유통기한 지난 빵 가져가라더니…" 

이에 대해 A씨는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해야 하는 빵을 종이봉투에까지 담아 알바생들에게 줬다. 폐기 빵이라 먹지도 않고 집에 가서 버렸는데 이를 절도라고 하니 황당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18일 근로계약서 미작성과 임금 체불, 최저임금 미보장 등으로 윤씨를 노동청에 신고했다. 그는 “좋게 해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잘못한 게 없지만, 이제 막 대학에 들어온 입장에서 경찰 조사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무섭다”고 했다.

A씨가 겪은 일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이후 윤씨가 지난 25일 A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노동청 신고가 들어왔다고 해서. 너무 감정에 치우쳤던 것 같다"며 "내가 오해를 했고 잘못 생각했다.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윤씨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카페 본사 측은 이 문제에 대해 "당사자 간에 원만하게 합의하려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법 지켜야”vs“갑자기 안 나오고 주휴 수당 챙겨”

경찰은 고소장이 접수된 만큼 고소를 취하하기 전까지는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아르바이트생과 점주의 갈등으로 노동청에 신고가 들어가면 점주가 그 반발로 고소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이 주로 모인 회원수 69만명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 ″주휴수당은 주고, 횡령은 신고하라″는 댓글 등 12개가 달렸다. [네이버카페 캡처]

자영업자들이 주로 모인 회원수 69만명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 ″주휴수당은 주고, 횡령은 신고하라″는 댓글 등 12개가 달렸다. [네이버카페 캡처]

이처럼 아르바이트생과 고용주의 갈등이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회원 수 69만명의 소상공인 온라인 카페에는 “알바가 그만두자마자 주휴수당 얘기를 한다”며 “가게 카드로 말없이 밥 사 먹었던데 이것도 횡령에 해당하느냐”와 같은 ‘법률 자문’이 올라오기도 한다. ‘법대로’ 나오는 알바생에게 ‘법대로’ 대응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서울 송파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백모(35)씨는 “주휴수당 등 근로기준법상 줘야 하는 돈은 주는 게 맞다는 걸 안다”면서도 “잠깐 일하고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알바를 고용하는 입장에서는 늘 불안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또 다른 업주는 “알바생이 짧게 일하고 갑자기 그만둘 경우 가게 운영에 차질이 생기는데 주휴 수당 요구를 받으면 부당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백씨는 “소모적이고 악의적인 법적 싸움보다는 당사자간 이해와 신뢰가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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