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10년 간 국내주식투자 허용범위 조정한 적 없어

중앙일보

입력

 전북 전주시 덕진구 국민연금 본사. 장정필 객원기자

전북 전주시 덕진구 국민연금 본사. 장정필 객원기자

정부가 지난 10년 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조정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26일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국내 주식 투자 목표 비중과 관련한 안건을 논의하기로 돼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 회의에서 목표 비중을 조정하거나 그런 효과를 내는 조치를 취한다면 개미투자가의 압력을 받아 원칙을 흔들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최혜영 의원실 답변 자료

25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이후 국민연금이 자산군별 투자허용범위를 변경한 적이 있긴 하지만 국내 주식의 범위를 조정한 적은 없었다. 올해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목표 비중은 전체 투자액의 16.8%이고 ±5% 범위에서 늘리거나 줄일 수 있게 허용 범위가 설정돼 있다.

또 허용범위(±5%)는 전략적 자산배분 2%, 전술적 자산배분 3%로 나뉘어 있다. 국내외 상황에 따라 어느 한쪽의 비율을 조정하거나 둘의 구성 비율(2대 3)을 조정할 수 있다. 허용범위 자체를 조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 주식의 경우 지금까지 어떠한 조정도 하지 않았다. 2012, 2014, 2015년 세 차례에 걸쳐 해외주식이나 국내 채권, 대체투자에 손댔을 뿐이다.

전술적 자산 배분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재량권과 관련이 있다. 그동안 세 차례 조정 때 주로 전술적 자산배분 허용범위를 확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장 변동이 심하면 자산별 허용 범위를 이탈할 수 있는데, 이를 막으려고 무리하게 사거나 파는 일을 줄이기 위해 여유를 주려는 조치이다.

기금운용본부는 '국내 주식의 허용범위(±5%)를 확대할 경우 어떤 효과가 있느냐'는 의원실에 질의에 이렇게 장단점을 설명했다. 기금본부는 "확대하면 장기적으로 불필요한 거래를 줄여 거래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5%가 확대되면 여유가 생겨 국내 주식 투자 목표 비중을 맞추려고 팔거나 사는 일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반대로 기금본부는 "기금운용위원회가 정한 국내 주식의 목표 비중을 달성하기 힘들어진다는 단점이 있다"고 답변했다.

보건복지부는 25일 보도설명자료에서 "기금운용위(26일)에서 국내 주식의 자산배분 목표 비중(16.8%) 조정을 논의할 계획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다만 국내 주식의 목표 비중 유지 규칙(리밸런싱)을 논의하고 국내 주식 허용범위 수준은 26일 회의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전술적 배분의 비중을 줄이면 우리가 시장 변동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여지가 줄어든다. 이럴 경우 기금운용위원회가 정해준 목표 비중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자금을 집행할 우려가 커진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국내 주식의 허용범위를 확대하거나 전략적 배분과 전술적 배분의 비율을 조정하게 되면 4.7 재보선을 앞두고 개미투자가의 요구를 맞추는 모양새를 갖추려 한다는 지적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전략적 배분과 전술적 배분의 비율을 조정하는 것은 조삼모사(朝三暮四,간사한 꾀로 남을 속여 희롱함을 이르는 말)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시장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한국연금학회 윤석명 회장(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은 사회적·정치적 압력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국민의 노후자금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기자 sssh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