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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청약 딜레마…사업 지연 땐 전세난민 ‘희망고문’ 우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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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호 04면

LH 사태로 3기 신도시 먹구름

전세난민 양산이냐, 청약난민 양산이냐.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을 앞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계획대로 진행했다가 신도시 사업이 지연되면 전세난민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전청약 당첨자는 입주 때까지 무주택 요건을 유지해야 한다. 입주 때까지 전·월세를 살아야 하는데, 전·월세가격이 상승세인 데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입주까지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일정을 뒤로 늦추기도 어렵다.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신도시 주변(당해지역)에서 전·월세 사는 젊은층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전청약을 미루면 이들은 청약난민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 7월부터 예정대로 공급 계획 #토지주·주민 반발로 차질 가능성 #MB 때 보금자리 입주 10년 걸려 #“경제적 손해 호소하는 사람 많아” #무작정 미루면 ‘청약난민’ 발생 #“신뢰 붕괴…정부가 해법 찾아야”

사전청약은 착공을 앞두고 진행하는 ‘일반적인 청약’(이하 본청약)보다 1~2년 앞서 진행한다. 주택 청약을 단순히 1~2년 앞당기는 것이지만, 주택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패닉바잉(공포 매수)’을 잠재울 수 있는 카드다. 정부는 패닉바잉이 확산하자 지난해 3기 신도시의 일정 물량을 올해 7월부터 신혼부부 등에게 사전청약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LH 직원들의 신도시 예정지 땅 투기 의혹이 확산하면서 사전청약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신도시 사업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계획대로 사전청약을 하면 본청약은 물론 실제 입주가 상당 기간 늦어져 당첨자에겐 ‘희망고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정부는 일단 계획대로 사전청약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대통령, 국무총리에 이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17일 “주택 공급 대책은 결코 흔들림, 멈춤, 공백 없이 일관성 있게 계획대로 추진해나가겠다”고 재차 밝혔다. 정부는 7월께 인천 계양 1100가구를 시작으로 3기 신도시에서만 연내 9700가구를 사전청약으로 공급한다. 내년에도 3기 신도시에서 1만2500가구가 사전청약을 받는다. 사전청약 물량은 2025년 완공이 목표다. 정부는 지난해 “1~2년 내에 본청약이 가능한 단지만 사전청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본청약 이후 공사기간을 고려하면 사전청약 이후 4~5년 내에 입주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LH 사태로 3기 신도시 예정지의 토지주·원주민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사업 지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남양주 왕숙에선 이달 초 시작한 지장물(건물·주택 등) 조사가 주민 반발로 최근 중단됐다. 또 다른 3기 신도시인 하남 교산 주민도 신도시 토지거래 전수조사를 요구하며 토지보상 절차 중단을 선언했다. 교산 인근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보상가격을 두고 LH와 주민들이 대치하고 있던 상황에서 LH 사태가 터지면서 주민들이 토지보상 보이콧(집단 거부)을 선언했다”며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신도시 입주도 늦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사실상 경질된 데다, LH 사장이 공석인 상태라는 점도 3기 신도시엔 걸림돌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전청약을 강행하면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처럼 사전청약 당첨 후 10년이 지난 뒤에야 입주하는 상황이 또 나올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주택 공급을 앞당기기 위해 사전청약제(당시 사전예약제)를 도입하고, 2009~2011년 세 차례에 걸쳐 13개 보금자리주택에 적용했다. 2009년 9월 서울 강남·서초, 고양 원흥, 하남 미사 등지에서 진행한 1차 사전청약 때는 본청약·입주 일정이 당초 계획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구리 갈매, 부천 옥길, 시흥 은계, 하남 감일에선 주민 반발에 따른 토지보상 지연으로 사전청약 당시 계획보다 3~5년 늦게 본청약을 진행했다.

하남 감일지구에선 사전청약 당첨 이후 10년 만에 입주한 사례도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사전예약 당첨자는 입주 때까지 무주택 요건을 갖춰야 해 전셋값이 급등하는 상황에서도 전세난민으로 떠돌 수밖에 없었다”며 “이에 따른 정신적·경제적 손해를 호소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말했다.

언제 입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보니 손에 다 잡은 내 집 마련 기회를 포기한 사람도 절반이 넘는다. LH와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09~2010년 사전청약 당첨자 1만3398명 가운데 일제 입주(본청약)한 당첨자는 5512명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은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LH 직원이나 공무원 등의 투기 사례가 더 드러난다면 토지보상 지연은 물론 신도시 취소 사태까지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리얼미터가 12일 만 18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광명·시흥 3기 신도시 추가 지정을 철회해야 한다는 응답이 57.9%에 달했다. 국민 10명 중 6명은 반대하는 셈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3기 신도시 청약만 바라보는 장기 무주택자나 30대 신혼부부가 적지 않다”며 “이들의 희망을 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신뢰 붕괴로 사전청약뿐 아니라 정부 공급 대책 전부가 문제”라며 “청약 대기 수요의 반발 등 무조건 미루는 것도 답이 아닌 만큼 정부가 서둘러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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