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 “인권수사 위해 이성윤 만났다”에 "황제조사" 비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최근 ‘김학의 전 법무부 장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의 주요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면담한 이유에 대해 17일 “인권 친화적 수사를 위해 만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처장은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김학의 사건을 검찰로 재이첩하기 직전(지난 7일) 이성윤 검사장과 만나 ‘공수처에 전속 관할권이 있으니 사건을 재이첩하지 말라’는 요청을 받았다”라고 시인,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김 처장은 “직접 수사의 일환으로 수차례에 걸친 이성윤 검사장 변호인의 면담 요청을 수락한 뒤 진술 거부권을 고지하고 조사했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진술 조서는 물론 면담 내용에 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아 논란을 키웠다. 사건을 넘겨받은 수원지검 측이 “이 검사장과 면담 내용 없이 면담 일시, 장소, 면담자만 적힌 수사보고만 사건기록에 편철돼 왔다”고 확인하면서다.

“사건관계자 면담 신청, 최대한 받는 게 원칙”

김 처장은 이날 오전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면서 “공수처는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를 표방하고 주요 사건 관계자들의 면담 신청을 가급적 받아주겠다는 원칙이 있다”며 “그래서 이 검사장의 면담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밝혔다. 이 검사장 면담 겸 조사는 면담에 방점이 찍힌다면서다.

김 처장은 면담 요청을 수락한 또 다른 이유로 “사건의 특수성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검사장은 검찰 수사를 받을 때 3번이나 소환 요구에 불응하고 언론을 통해 ‘검찰에서 수사함이 상당(타당)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쳤다”며 “저희로선 이 검사장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면담 신청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 검사장 측으로부터 압력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했다.

16일 김진욱 공수처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했다. 오종택 기자

16일 김진욱 공수처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했다. 오종택 기자

“검사는 처장·차장 2명뿐이라 직접 면담” 

문제는 수사기관의 장으로서 검찰 이첩에 반대하는 주요 피의자를 면담한 게 “인권수사 목적”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정식 조서는 물론 면담 내용 기록조차 남기지 않아 앞뒤가 안 맞는다는 점이다.

김 처장은 공수처 수장이 직접 피의자를 만난 데 대해선 “현재 공수처는 수사 인력 채용이 완료되지 않아 검사는 나와 차장 2명뿐”이라고 현실론을 폈다. 김 처장이나 여운국 차장이 홀로 만날 수도 있지만, 둘이 함께 나가는 게 외부에서 볼 때 불필요한 오해를 최소화하리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피의자를 면담 조사하고서 조서를 남기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주임검사도 아닌 공수처장과 차장이 직접 정식으로 조사하고 조서까지 남기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수사보고서만 기록한 것”이라고 했다.

면담기록·조서 누락엔 “면담 내용 한두 줄 적을 걸…”

법조계에선 “조서를 작성하지 않을 경우 반드시 보고서에 ‘조서를 작성하지 않는 이유’를 포함해야 하는데 김 처장은 빠뜨렸다”고 지적한다.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제26조에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처장은 “해당 규정을 준용하면 조서 미작성 이유를 기재해야 했는데 그게 빠진 건 문제”라고 시인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연합뉴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연합뉴스

“검찰 수사팀장과도 2차례 통화했다” 공개

수사보고서에도 면담 내용을 기재하지 않은 데 대해선 “면담 내용은 수사보고서에 첨부된 이 검사장 변호인의 의견서, 이 검사장의 진술서, 의견서 등과 같기 때문에 면담 내용란을 채우지 않았다”며 “지금 생각하면 한두 줄이라도 쓸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그는 면담 과정에서 일부 절차상 하자가 있을지라도 이 검사장에게 부당한 편의를 제공한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공수처가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이 검사장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건이 검찰(수원지검)로 재이첩됐다는 게 주된 이유다.

하지만 김 처장이 “공수처에 사건의 전속 관할권이 있다”는 이 검사장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인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처장은 사건을 검찰에 재이첩하면서도 “기소권은 공수처에 있으니 수사를 마치면 사건을 송치하라”고 조건부 이첩을 해, 공수처와 검찰 간 충돌을 빚은 상태다.

이날 김 처장은 피의자인 이 검사장을 직접 만난 것뿐만 아니라 수원지검 수사팀장인 이정섭 형사3부장과 2차례 통화한 사실도 공개했다. 김 처장은 “앞으로도 주요 사건의 피의자가 면담 신청을 해오면 주임 검사를 통해 면담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김종민 “택도 없는 해명…공수처에 치명적 오점”

김종민(사법연수원 21기)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은 이날 중앙일보와 전화통화에서 “택도 없는 해명을 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공수처가 탄생한 이유는 인권 친화적 수사를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며 검찰 등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철저하게 수사하기 위해서라고 김 전 지청장은 강조했다.

그는 “이 검사장은 공수처장과 차장의 영접을 받은 것이다”라며 “굳이 조사라고 한다면 황제 조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공수처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다”고 덧붙였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