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을 잉태할 후보”(오세훈) “토론도 못 하는 사람”(김종인) “옹고집, 어리석은 사람들”(안철수)
단일화 TV토론은 16일 오후 5시 30분 개최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화를 앞두고 14~15일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인사들 사이에서 오간 말이다. 전날 국민의힘 오 후보와 국민의당 안 후보가 직접 통화해 비전발표회 개최에 합의하면서 갈등이 봉합되는 듯싶더니, 15일엔 다시 거친 설전이 벌어졌다.
포문을 연 건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당 중앙선대위 첫 회의에서 안철수 후보를 겨냥해 “토론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은 서울시장 후보가 될 수 없다”고 작심한 듯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단일화 여론조사 문항에 후보 소속 정당과 기호를 표기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 당은 오세훈 후보를 기호 2번 국민의힘 후보로 정했다”며 “이런 걸 무시하고 딴짓하는 건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회의 뒤 취재진과 만난 김 위원장의 발언은 더 과감해졌다. 김 위원장은 “그렇게 자신이 없는 사람(안 후보)이 출마를 왜 하려고 하느냐. 토론도 못 하면서 어떻게 시장 노릇을 할 거냐”고 지적했다.
전날 “안 후보는 분열을 잉태할 후보”라고 작심 비판한 오 후보도 거듭 견제구를 던졌다. 오 후보는 “안 후보로 단일화되고, 거기에 더해 당 외곽 유력 대선주자(윤석열 전 검찰총장)와 결합하면, 내년 대선은 야권 분열 상태에서 치러지는 최악의 선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후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안 후보는 이날 오후 입장을 내고 “김 위원장 발언은 정말 모욕적이다. 저는 토론을 피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안 후보는 “어디서 엉뚱한 소리를 듣고 엉뚱한 말씀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며 “많은 야권 지지자가 김 위원장의 그런 옹고집과 감정적 발언에 한숨을 쉬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 후보는 같은 날 최고위 회의에선 “야권에는 안철수 단일후보를 막아야 본인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대상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국민의당 내부에서는 “김 위원장 측을 겨냥한 말 아니겠냐”는 해석이 나왔다.
안 후보는 “분열을 잉태할 후보”라는 오 후보의 전날 발언에 대해서도 “놀랍고도 충격적이다. 단일화 상대에게 할 말이냐”고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안 후보는 “요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지지율이 좀 올라간다 싶으니까 3자 구도로 가겠다는 밑자락을 까는 것이냐”며 “단일화의 진정성은 갖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지난해 제가 정치생명을 걸고 문재인 정부와 맞서 싸울 때 어디 계셨는지도 모르는 분이 저보고 야권 분열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발표된 15일 문화일보-리얼미터 여론조사는 양측에 묘한 긴장감을 더했다. 이날 조사에서 가상 3자대결 지지율은 오세훈(35.6%), 박영선(33.3%), 안철수(25.1%) 순이었다. 3자 대결에서 야권 후보가 선두로 조사된 건 처음이다. 양자 대결에선 두 후보 모두 박 후보를 17.0% 포인트 이상 앞섰다. 단일 후보 대결에선 오 후보 39.3%, 안 후보 32.8%로 조사됐다. (자세한 내용은 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야권 내부에선 “이러다가 단일화가 엎어질 것 같다”(국민의힘 초선 의원)는 우려까지 나왔다.
갈등 격화를 넘어서, 단일화 무산에 대한 우려까지 흘러나오자 두 후보는 한발 물러났다. 이날 오후 열린 단일화 비전발표회에서 오 후보는 “(분열을 잉태할 후보라는) 표현이 직설적이었던 것 같다. 안 후보님, 죄송하다. 사과를 드린다”고 진화에 나섰다. 안 후보도 “(오 후보의) 말을 들으니 제 생각이 기우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양측 실무단은 이날 오후 4차 협상을 끝내고 “16일 오후 5시 30분부터 채널A 주관으로 80분간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토론은 한 번만 하기로 합의했다. 여론조사(17~18일 예정)는 업체 두 곳을 선정해 조사하기로 했지만, 핵심 쟁점인 여론조사 문항을 놓고는 16일 오후 1시부터 재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협상 데드라인이 16일인 점을 고려하면, 순탄한 단일화를 장담할 순 없다는 게 양측의 반응이다. 한 실무단 관계자는 통화에서 “여론조사 문항 등 민감한 사안은 확정된 게 없다”며 “TV 토론과 별개로 16일 협상이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