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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에베, 패션쇼 대신 신문 발행한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로에베는 2021년 F/W 컬렉션 발표를 위해 패션쇼 대신 신문 발행을 선택했다. 사진 코오롱FnC

로에베는 2021년 F/W 컬렉션 발표를 위해 패션쇼 대신 신문 발행을 선택했다. 사진 코오롱FnC

“로에베 패션쇼가 취소됐다.” 모델이 펼쳐 든 신문 1면에는 이러한 헤드라인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뒷면부터는 스페인 패션 브랜드로, LVMH 계열인 로에베가 선보이는 2021년 가을·겨울(F/W) 의상 사진이 담겼다. 이는 5년째 로에베를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36)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종이 신문’ 형태의 컬렉션 발표이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뉴스 속 패션쇼(A Show in the News)’라고 지었다.

조나단 앤더슨 인터뷰

앤더슨은 뉴욕타임스(NYT)가 뽑은 ‘오늘날 가장 진보적인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대학 졸업 3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딴 ‘JW앤더슨’을 런칭해 단숨에 ‘스타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렸고, 국내에서는 다섯 번에 걸친 유니클로와의 협업으로 유명하다.

앤더슨은 한국·중국·홍콩 등 아시아 3개국 매체와 동시에 진행하는 줌(zoom) 화상 인터뷰를 통해 “지금 ‘현재’를 기록하는 패션의 본질적인 역할은 신문과 닮았다”며 새로운 형태의 패션쇼를 고안한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그는 “흘러가는 디지털 매체보다 손에 잡히고, 만질 수 있고(tangible), 소중하게 보관할 수 있는 종이 신문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 사진 코오롱FnC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 사진 코오롱FnC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는 인쇄 매체를 활용한 이유가 무엇인가.  
“전통적인 신문의 배부 방식을 차용했다. 누구나 가까운 가게에서 집어 들 수 있고,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공감할 만한 스토리를 제공하고, 쉽게 집에 가져갈 수 있고, 마지막으로 내용을 신뢰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신문의 매력은 이러한 접근성, 실재하는 촉감, 그리고 신뢰성에 있다. 개인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올드 미디어가 주목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시각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독자의 경우 디지털 매체를 이용하는 것에 익숙한데.  
“많은 사람이 컴퓨터 또는 아이폰 화면을 통해 이미지를 보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 때문에 정확한 색(色)에 대한 감각을 잃고 있다. 디지털을 통해 전달되는 색감은 화면마다 다르게 비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손에 잡히는 소설책과 같은 아날로그 매체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촉감이 주는 공감대를 원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온라인 쇼핑 시장이 커진다고 해도 오프라인 매장의 직접적인 경험을 대신할 수 없듯이, 인쇄 매체도 디지털로 대체할 수 없는 장점이 많다.” 
로에베가 발행한 종이 신문의 1면 헤드라인에는 "로에베 패션쇼가 취소됐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사진 코오롱FnC

로에베가 발행한 종이 신문의 1면 헤드라인에는 "로에베 패션쇼가 취소됐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사진 코오롱FnC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앤더슨에게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재난적 상황은 생소한 일이 아니다. 1998년 ‘성(聖) 금요일 평화 협정(Good Friday Agreement)’이 성사되기 전까지 북아일랜드 내부에서는 폭력과 갈등이 30여년간 지속했다. 앤더슨은 “나는 거리 전체가 폭파되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며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고, 대단해 보이는 것도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패션업계의 미래를 전망한다면.  
“나는 사회와 분리된(detached) 패션은 거부한다. 팬데믹을 겪으면서도, 두 눈을 감고 창작만 한다면 어떻게 소비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겠는가. 최근 락 다운(봉쇄) 덕에 생긴 여유를 활용해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특히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연구하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려고 노력 중이다.”  
로에베의 2021년 F/W 컬렉션. 사진 코오롱FnC

로에베의 2021년 F/W 컬렉션. 사진 코오롱FnC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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