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자본금에 직원은 투명인간…서울에만 ‘유령 건설사’ 1900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서울시에 등록된 건설사업자 1만3000여곳 중 1900여 곳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라는 분석이 나왔다. 서울시 발주 공사에 입찰한 건설사업자를 사전 단속한 결과다. 이들 페이퍼컴퍼니는 법으로 정해진 기술력과 자본금, 시설 등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부실시공 위험이 큰 데다 입찰 때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주범으로 꼽혀왔다.

입찰 참여 111개 업체 중 18곳 적발 #시 “조사영역 확대, 처벌 강화할 것”

서울시는 “지난해 7월부터 시가 발주한 공사에 입찰한 지역제한 경쟁 111개 건설사업자를 대상으로 사전단속을 한 결과 부적격업체 18곳(16.2%)을 적발했다”고 9일 밝혔다. 이들 기업은 건설산업기본법 10조에 따른 기술능력, 자본금, 시설·장비 등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건설공사를 따내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뒤 각종 불법행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서울시 발주공사 입찰에 참여했던 A건설사는 서류상 전문면허 3개를 보유해 기술자 6명이 상시 근무해야 하지만 실제 근무자는 없었다. 또 A사가 20년 전 취득한 설비는 이미 감가상각이 완료돼 잔존가치가 ‘제로(0)’ 인데도 재무제표에 6억원을 허위 기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금 기준에 미달하자 허위로 잔고 증명서를 발급받은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입찰에 참여한 B건설사는 “자본금을 가짜로 맞춰주겠다”는 투자 자문회사의 소개로 2억원을 실제 거래 없이 허위로 만들었다.

서울시는 국토교통부 등 관련 전문기관의 조사를 근거로 서울 내 건설사 1만2992개 중 약 15%가 페이퍼컴퍼니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시가 입찰 공고문에 ‘건설업자 등록기준 실태점검을 하겠다’는 내용을 추가한 이후 입찰 참여업체가 31% 감소하기도 했다.

한제현 서울시 안전총괄실장은 “3월부터는 서울시 본청·사업소가 발주하는 예정금액 2억원 이상 공사로 조사 영역을 확대해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할 계획”이라며 “특히 타인의 국가기술자격증을 빌린 경우엔 등록말소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