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백신 반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내셔널팀 기자

김현예 내셔널팀 기자

#한 무리의 경찰이 집에 들이닥쳤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에게 경찰이 내민 것은 다름 아닌 주사기. 창궐하는 전염병을 막아야 하니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찰을 동원한 강제접종은 화를 불렀다. “경찰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한다. 은밀한 부위에 맞아야 한다”같은 과장된 이야기에 “백신을 맞아도 소용이 없다. 안전하지 않다”같은 소문까지 뒤섞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접종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브라질 의회가 백신 의무접종을 법제화한 지 한 달 만인 1904년 11월,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백신 반란(Vaccine Revolt)이었다. 거센 시위에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했다. 30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다쳤다. 참담한 일은 그 이후에도 벌어졌다. 5년 뒤 천연두가 유행하면서 9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24일 새벽. 메시지 알림 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소방청에서 낸 입장문이었다. 요지는 하나. “119 구급대원 백신 접종은 강제가 아니며, 백신접종을 거부해도 불이익은 없다”는 내용이었다. 새벽에 부랴부랴 소방청이 입장문을 내놓은 것은 백신접종 거부 때문이다. 구급대원 1만여 명은 코로나19 백신 우선접종 대상자로 올 3월 안에 주사를 맞게 돼 있다. 백신을 맞겠다고 한 경우엔 문제가 없었지만 ‘안 맞겠다’고 한 구급대원이 있는 경우 일부 면담을 했다. 불안은 퍼졌다. 구상권 청구 소문까지 나자 소방청은 “확진 공무원에 대한 구상권 청구 사실이 없고, 앞으로도 청구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면담에 대해서도 “접종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면담을 통해 사유를 확인하도록 했지만, 인사상 불이익은 검토하거나 지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오늘부터 전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마라톤이 시작된다. 정세균 국무총리 말을 빌리자면 “역사적 첫 접종”으로 “고대하던 일상 회복으로의 첫걸음”이다. 접종자는 요양병원 등 만 65세 미만 입소자와 종사자 총 28만9000여명. 당초 대상자의 93.6%가 주사를 맞는다. 뒤집으면 6.4%는 여러 이유로 백신 접종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의미기도 하다. ‘1호 접종은 대통령이 하라’ ‘국가원수가 실험 대상이냐’의 정치 설전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 주사기 앞으로 나서는 국민, 머뭇거리며 접종을 미루는 국민을 돌아봐야 할 때다. 그게 정치다.

김현예 내셔널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