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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결국 청와대 출신이 꿰찬 초대 국가수사본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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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의 초대 본부장으로 추천된 남구준 경남경찰청장이 23일 오전 경남 창원의 경남경찰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의 초대 본부장으로 추천된 남구준 경남경찰청장이 23일 오전 경남 창원의 경남경찰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막강해진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국수본)의 초대 본부장에 현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 출신의 남구준 경남경찰청장이 추천됐다. 남 청장은 경찰청 형사과장·특수수사과장을 거쳐 전문성은 인정되지만,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을 두고 우려가 나온다. 남 청장은 청와대 근무 경력 이외에도 현 정권 실세이자 본부장 제청권자인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의 고교 후배란 점에서 주목받는다. 김창룡 경찰청장과 같은 PK(부산·경남) 출신이면서 경찰대 후배다. 두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를 관할하는 경남경찰청장을 지냈다. 이런 끈이 없다면 그가 본부장 공모에 지원한 다섯 명을 모두 탈락시키면서 발탁될 수 있었을까.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설립된 국수본을 권력으로부터 지켜낼지도 의문이다.

수사 개혁 상징으로 떠오른 경찰 기관 #출범부터 정치적 중립성 의심받게 돼

검찰 지휘에서 벗어난 경찰은 1차 수사종결권까지 갖게 됐다. 대폭 확대된 권한을 국수본이 행사한다. 그에 따른 책임 역시 국수본 몫이다. 초대 본부장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그래서 중요하다. 검찰의 권력을 상당 부분 가져간 경찰이 그 힘을 검찰보다 엄정하게 행사하리라는 기대는 벌써 무너지고 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 관련 사건을 장기간 수사하고도 성추행 유무를 판단하지 않았다. 검찰과 인권위원회가 아니었다면 피해자의 고통은 더 심해졌을 것이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은 경찰 수사관이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고도 덮은 의혹까지 드러나 국가수사본부장 직무대리가 “국민께 상당히 송구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이렇게 현 정권 실력자가 연루된 사건만 맡으면 경찰은 한없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수사 능력이 모자란 건지 ‘모자란 수사관’ 시늉을 하는 것인지 걱정이 커진다. 정권 핵심 인사와 얽히고설킨 인연에도 불구하고 남 청장이 국수본의 중립성을 지키리란 기대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범죄 수사의 최종 책임자인 윤석열 검찰총장조차 소신대로 여권 실세를 수사했다는 이유로 손발이 잘리고 당·정·청으로부터 갖은 수모와 공격을 당하는 걸 목격하고서도 정권의 눈치를 안 볼 수 있을까. “퇴직하면 변호사를 할 수 있는 검사에 비해 신분이 불안한 경찰은 권력 앞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 출신이라면 더 그렇다”는 전직 지방경찰청장의 우려를 흘려들어선 안 된다.

2011년 문 대통령과 함께 검찰 개혁을 다룬 책을 썼던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제대로 된 자치경찰제 없이 국가수사본부를 구성한 건 중앙집권적인 국가경찰을 하나 더 만든 꼴”이라며 ‘경찰 파쇼’를 경고하고 나섰을 정도다. 정권이 수사기관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무너뜨리면 당장은 수사 권력을 마음껏 휘두를지 몰라도 언젠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