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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수업 듣고 점심은 라면…코로나19 아이 일상 덮쳤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2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대구종합사회복지관 직원들이 사회적 단절 위기아동 긴급지원을 위한 '함께 나누는 한 끼 BOX' 키트를 제작했다. 제공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지난해 2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대구종합사회복지관 직원들이 사회적 단절 위기아동 긴급지원을 위한 '함께 나누는 한 끼 BOX' 키트를 제작했다. 제공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서울시 서대문구에 사는 김민수(12·가명) 군은 지난해 집에서 홀로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 늘었지만, 부모가 모두 일을 해 돌봐 줄 사람이 없었다. 온라인 수업은 생소했다. 수업을 듣다 모르는 내용이 나와도 바로 질문하지 못했다. 화면만 켜 놓은 채 딴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점심은 주로 라면 같은 간편식으로 대충 때웠다.

10명 중 7명 집에서 혼자 

코로나19 유행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저소득 가정 아이의 돌봄공백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23일 발표한 ‘코로나19 1년, 변화된 아동 일상 확인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답한 아이(만10~16세) 10명 가운데 7명은 보호자 없이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 설문조사는 취약계층 아동을 위한 코로나19 대응 지원방안을 알아보고자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재단에서 지원하는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2학년 582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하루 5시간 이상 혼자있기도 

설문결과 코로나19 상황에서 ‘집에 혼자 혹은 아동끼리 있는 시간이 있다’고 답한 아동은 72.1%로 나타났다. ‘하루 1~3시간 미만’(20.1%) 혼자 있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하루 5시간 이상’ 혼자 있는 경우도 18.6%를 차지했다. ‘1시간 미만’은 18.4%, ‘하루 3~5시간 사이’는 15.0%였다. ‘항상 어른이 함께한다’고 답한 아동은 27.9%였다.

비대면 원격 수업으로 개학한 서울의 한초등학교 1학년 9반 교실에 방역 물품이 비치돼 있다. 연합뉴스

비대면 원격 수업으로 개학한 서울의 한초등학교 1학년 9반 교실에 방역 물품이 비치돼 있다. 연합뉴스

또 10명 가운데 3명은 간편식 등 균형이 잡히지 않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는 동안 나는 주로 어떤 식사를 하나’라는 질문에 25.8%는 ‘항상 간편식을 먹거나 자주 간편식을 먹고 가끔 균형 잡힌 식사를 한다’고 답했다. 56.3%는 ‘주로 학교급식처럼 영양이 풍부한 식사를 하고, 가끔 간편식을 섭취한다’고 했고, ‘항상 학교 급식처럼 영양이 풍부한 식사를 한다’고 답한 비율은 18.0%뿐이었다.

"내 이야기 들어줄 사람 필요" 

아이들은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자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친구, 선생님)’(39.1%), ‘영양이 풍부하고, 다양한 반찬이 있는 식사’(26.7%), ‘외부기관(지역아동센터, 학교, 학원, 복지관) 프로그램 이용’ 순으로 답했다. 현재 우리 집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말에는 ‘넓은 집’(53.1%)과 ‘독립적인 공간’(44.6%)이라고 답했다. 재단은 심리·정서적, 물리적 돌봄 공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이후 여가는 대부분 실내활동으로 보냈다. ‘유튜브 등 미디어 시청’(62.4%)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컴퓨터, 휴대폰 게임’(59.4%)을 하며 보낸다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운동’을 선택한 응답자는 14.1%뿐이었다.

안전한 학교생활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개인위생 지키기’(55.2%)와 ‘위생용품 지원’(24.5%) 등이라고 답변했다. 재단은 이와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취약가정 아동을 위한 다양한 코로나19 대응 지원 프로그램을 전개할 계획이다.

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은 “코로나19 장기화로 교육격차, 돌봄 공백, 정서적 우울감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학습 지원 서비스 등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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