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공무원 울린 '시보 떡'···50대 선배는 "고생 안해봐 저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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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왼쪽)과 전 장관이 1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사진 뉴시스·페이스북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왼쪽)과 전 장관이 1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사진 뉴시스·페이스북

2년 차 지방직 공무원 20대 A씨는 지난해 팀장이 “시보 기간이 끝나면 부서에 뭘 돌릴 거냐”고 묻던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A씨는 “그런 문화가 있는 줄 몰라 깜짝 놀랐었다”며 “시보 떡을 돌리는 데만 10만원 넘게 썼다. 원해서 산 것도 아니었고 상식선에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근 공무원 ‘시보 떡’ 문화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보는 공무원 정식 임용 전 거치는 과정을 말한다. ‘시보 떡’은 신입 공무원이 보통 6개월의 시보 기간을 마친 뒤 동료들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아 떡을 돌리는 관행이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를 갑질이라고 주장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와 논란이 됐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동료가 사무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자신이 돌린 시보 떡을 보고 밤새 울었다는 인터넷 글이 도화선이 됐다.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관계 부처의 장관이 진화에 나섰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시보 떡이 조직 내 경직된 관행으로 자리 잡으면서 새내기 공무원에게 부담과 상처가 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앞으로 이와 같은 불합리한 관행은 타파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공무원 임용을 앞둔 이들이 모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방에서는 “걱정이 컸는데 우리가 시보 기간이 끝날 땐 (떡을) 돌릴 필요가 없겠다”며 들뜬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전 장관은 “젊은 공무원의 목소리를 듣는 ‘정부혁신 어벤저스’와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한 50대 공무원은 “젊은 공무원들이 고생을 안 해봐서 그런다. 그런 것까지 불만이라고 하면 어떡하느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친근감의 표현으로 장난처럼 뭐 돌릴 거냐고 물어본 건데 그게 그렇게 잘못이냐”고 되묻는 공무원도 있었다. 조직 내 소통과 서로 간 이해 부족이라는 걸림돌은 여전하다는 뜻이다.

공직사회에도 밀레니얼 세대가 합류하면서 변화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이를 인식해 행안부가 지난해 11월 펴낸 책자『90년생 공무원이 왔다』에는 “한 조직의 문화를 바꾸는 것은 그 어떤 변화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공무원 조직 내 자리 잡은 여러 낡은 관행이나 문제들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변화는 장관 한 명의 외침이나 책자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

채혜선 사회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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