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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사 '커조남'…커피 5500잔 기부한 휠체어 영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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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구는 지난해 2월 18일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후 두 달간 1차 대유행을 겪었다. 6700여명의 확진자가 쏟아지자 대구 곳곳에서는 큰 변화가 나타났다. 마스크를 안 쓰면 지적하고, 헛기침만 해도 놀라는 모습은 더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코로나19가 남긴 생채기는 시민들의 몸과 마음에, 지역경제 곳곳에 남아있다. 대구 전체를 흔들어놓은 코로나19의 상처와 치유, 회복 과정을 3회에 걸쳐 되짚어본다.

[코로나 1년, 대구]?악몽 속 나타난 천사들

'커피 맛을 조금 아는 남자' 카페 대표는 지난해 2월 말 대구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덮쳤을 때 카페 문을 닫고 의료진에게 커피를 기부했다. [사진 김현준 대표]

'커피 맛을 조금 아는 남자' 카페 대표는 지난해 2월 말 대구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덮쳤을 때 카페 문을 닫고 의료진에게 커피를 기부했다. [사진 김현준 대표]

지난해 2월 28일 오전 대구 수성구의 한 카페. 당시 대구를 휩쓴 코로나19 여파로 카페 영업이 중단된 상태였다. 하지만 가게 안에서 카페 대표와 직원 10여 명이 내리는 커피 향만은 어느 때보다 진했다. 대구 지역 내 의료진들에게 기부하기 위한 커피를 만드는 모습이었다.

커피가 내려지자 직원들은 자체적으로 만든 캔 용기에 커피를 담았다. 이어 퀵 배달기사가 카페 앞에 도착하자 갓 내린 커피를 담은 캔커피 50개씩을 담은 박스 4개를 건넸다. 휠체어를 타고 나온 카페 대표는 “코로나19 거점병원 4곳에 보내달라”고 배달 기사에게 주문했다. 카페 ‘커피 맛을 조금 아는 남자(이하 커조남)’ 얘기다.

김현준 '커피 맛을 조금 아는 남자' 카페 대표는 지난해 2월 말 대구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덮쳤을 때 카페 문을 닫고 의료진에게 커피를 기부했다. [사진 김현준 대표]

김현준 '커피 맛을 조금 아는 남자' 카페 대표는 지난해 2월 말 대구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덮쳤을 때 카페 문을 닫고 의료진에게 커피를 기부했다. [사진 김현준 대표]

커조남은 코로나19 초반 한 달여 간 5500잔의 커피를 의료진들에게 전달했다. 돈으로 환산하면 약 2700만원(한 잔 5000원)어치다. 커조남은 이후로도 커피뿐만 아니라 현금 300만원, 마스크 2700장 등도 기부했다. 커피 세미나를 열어 참가비 전액을 후원하기도 했다.

‘휠체어를 탄 대표님’으로 불리는 김현준(42) 커조남 대표는 1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난치병을 가지고 태어나 모두가 포기했을 때 의사 한 분이 희망을 줬다”며 “의료진이 코로나19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든 도와야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체장애 1급인 김 대표는 뼈가 쉽게 부러지는 골형성부전증을 가지고 태어났다. 2008년 초 카페를 창업한 후 지금까지 1m 높이로 제작된 의자에 앉아 커피를 내리고 있다. 개업 초기엔 “장애인이 커피를 내린다”는 부정적 인식과 맞서야 했지만, 지금은 대구에 4개 직영점이 있을 정도로 단골이 늘었다.

그는 자신이 후원하는 커피와 손님이 주문한 드립백 등에 “편견을 버리고 우리를 있는 그대로 봐주세요”라는 글을 붙였다. 1년이 지난 지금은 “힘을 모아 이겨냈고, 또 함께 이겨내야 한다”는 문구로 바뀌었다.

지난해 2월 28일 오후 코로나19 확진자 격리병상이 마련된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 얼굴에 보호구를 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2월 28일 오후 코로나19 확진자 격리병상이 마련된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 얼굴에 보호구를 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연합뉴스

윤성원(43) 반올림 피자샵 대표도 코로나19 악몽에 시달리던 대구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하자 세입자들에게 월세를 한 푼도 받지않는 ‘착한 건물주’가 됐다. 지난해 2월 말 한 통의 제보 메일에는 “수성구 한 3층 건물주가 월세를 받지 않기로 해줘서 너무 감사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제보자는 “손님이 아예 없는데 건물주가 월세를 면제해줘 눈물이 났다”고 썼다.

윤 대표는 지난해 1차 코로나19 확산 당시 총 1300만원에 달하는 3층짜리 건물의 임대료를 두 달동안 받지 않았다. 그는 “당시엔 다른 건물주에게 눈총을 받은 것도 사실(웃음)”이라며 “세입자분들과 함께 어려운 상황을 함께 이겨나가고 싶었다”고 했다.

오성훈 간호사의 그림일기. [오성훈 제공]

오성훈 간호사의 그림일기. [오성훈 제공]

‘코로나 전사’를 자처하며 전국에서 달려온 의료봉사자들도 많았다. 스타트업 대표인 오성훈(29)씨가 그중 한 명이다. 1년 전 오씨는 “대구에서 코로나가 마구 퍼지고 있다”는 소식에 서랍 속에 있던 간호사 면허증을 꺼냈다. 그러곤 파견 지원서에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곳에 보내달라”고 썼다.

경북 청도대남병원 등에서 의료봉사를 한 그는 일기로 당시의 모습을 남겼다. 그가 코로나 현장을 담은 그림일기에는 “처음엔 두렵고 무서웠지만, 이제는 힘 모아 이겨냅니다”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오씨는 “봉사하는 동안 기대 이상의 응원을 받았다"며 "1년 전 당시를 묵묵히 버텨낸 의료진들, 병을 극복한 환자들, 응원하는 국민들 모두가 희망이었다"고 말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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