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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올리버 『천 개의 아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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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천 개의 아침

천 개의 아침

나는 큰떡갈나무 아래 살았을 때/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느낌이었지./  나는 리틀시스터 연못가에 살았을 때,/  기슭에 남겨진/  왜가리 깃털이 된 꿈을 꾸었지./ 나는 수련이었고, 내 뿌리는 동맥처럼 섬세했어,/ 얼굴은 별 같았고,/ 행복이 넘쳐흘렀지./ 나중에 나는 바다를 따라가는 발자국이었어.

메리 올리버 『천 개의 아침』

시끌벅적한 인간사가 싫고 자연이 좋아지면 늙었단 증거라는 말이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시는 어떤가. “오늘 아침/ 아름다운 백로 한 마리/ 물 위를 떠가다가// 하늘로 날아갔지/ 우리 모두가 속한/ 하나의 세계//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다른 모든 것들의 일부가 되는 곳// 그런 생각을 하니/ 잠시/ 나 자신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져.”(‘하나의 세계에 대한 시’). 여기서 자연은 그저 번잡한 일상을 피해 가는 곳이 아니다. 모든 존재를 품어주는 곳.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곧 나다.

미국인들이 사랑한 시인 메리 올리버. 2019년 그가 세상을 뜨자 “그녀의 말들은 자연과 정신계를 이어주는 다리였다”(마돈나) “당신의 삶은 이 세상에 하나의 축복이었다”(오프라 윈프리) 등 셀럽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평생 자연 곁에서 살았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자연이라는 교과서에 주목한 자연주의자”(‘서치’)란 평을 받는다. 자연과의 합치를 노래한 인용 글은 시 ‘인생 이야기’의 도입부.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지금 나는 여기 있고, 나중에는 저기 있을 거야./ 나는 저 작은 구름이 되어, 물을 내려다볼 거야,/ 멈추어 있는 구름, 흰 다리를 든 구름/ 아기 양처럼 보이는 구름.”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