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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좀 그렇게 크면 어때서요?” 아득바득 버티던 엄마에게 물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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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아이’ 속 보호종료아동 출신 아영(김향기, 왼쪽)과 싱글맘 영채(류현경).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아이’ 속 보호종료아동 출신 아영(김향기, 왼쪽)과 싱글맘 영채(류현경).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10일 개봉하는 영화 ‘아이’(감독 김현탁)는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각각 보호종료아동 출신인 아영(김향기)과 술집 나가는 싱글맘인 영채(류현경)는 이를테면 ‘마을 바깥’에 처한 사람들. ‘씨X’ 소리 절로 나는 궁색한 환경인데도, 가만 보면 밝다. 아득바득 생명력으로 버티는 이들이 서로 ‘마을’이 돼서 키울 이 아이가 우리 마을의 미래가 될 거라는 울림이 전해진다.

김향기·류현경 주연 영화 ‘아이’ #출산·양육·정상가족 질문 던지며 #보호종료아동과 싱글맘 분투 그려

특히 아역배우 출신인 두 주인공의 호연이 빛난다. 김향기가 맡은 아영은 생활비 마련에 전전긍긍하다 베이비시터 아르바이트에 나선 아동학과 졸업반 학생. 류현경이 연기한 영채는 생후 6개월 된 아들 혁이 양육비를 버느라 술집에서 일한다. 영채가 ‘이렇게 키우는 게 아이에게 좋을까’ 하는 자책에 시달릴 때 아영은 “좀 그렇게 크면 어때서요?” 라고 반문한다. 양육 포기를 놓고 대립하는 이 질문은 마지막까지 팽팽히 관객을 끌어당긴다.

“이분법적으로 어떤 게 옳다 나쁘다 따질 수 없죠. 아영이는 굉장히 생활력이 강한 반면 공허함, 결핍이 있는데 그게 혁이를 만나면서 채워져요. (그런 혁이를 포기하려는) 영채가 처음엔 이상했지만 차츰 이해하고 싶은 사람으로 변하죠.”(김향기)

“영채는 환경도, 자신에 대한 믿음도 부족한데 아영 같은 귀인을 만나(웃음) 달라져요. 시나리오 읽었을 때 제목의 ‘아이’가 과연 누구일까 생각했어요. 이번 영화 찍으면서 ‘혼자가 아니구나’ 느꼈고 성장한 듯해요.”(류현경)

영화 개봉을 앞두고 두 사람을 각각 화상인터뷰로 만났다. “아영의 행동과 선택에서 ‘왜’ 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나랑 닮았다”(김) “상실감을 느끼는 영채에게서 나 역시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렸다”(류) 등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투영했다. 특히 자립심 강한 보호종료아동으로서 당찬 존엄성을 뿜어내는 김향기는 완연한 성인 배우 모습이다. 보호종료아동이란 아동복지법상 만 18세가 돼 보육 시설 혹은 위탁 가정에서 퇴소한 청소년을 일컫는 말. 앞서 ‘우아한 거짓말’(2014)와 ‘증인’(2018)에 이어 김향기의 ‘위로 3부작’이란 얘기가 나온다.

“보호종료아동이란 사회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제겐 자립심이 강하고 주체적인 인물로 다가왔어요. 감정선 역시 아영 입장에서 정했어요. 예컨대 ‘언니 나쁜 사람 아니잖아요’ 하는 장면에선 원래는 안아주는 거였는데, 그냥 그 말이 떠올랐고 그대로 연기하니 오히려 잘 살았다고 오케이 됐죠.”(김)

2003년 파리바게트 CF를 통해 3살 때 데뷔한 뒤 ‘신과 함께’ 시리즈만으로 2600여만 관객을 끌어들인 베테랑 배우답다. “성인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확장해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면서 “특히 저의 ‘찐팬’이라고 평소 밝혀온 류현경 언니와의 호흡이 좋았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역시 아역 출신(13세 데뷔)인 류현경도 걸쭉한 욕을 차지게 내뱉으면서도 아영보다 아이스러운 영채를 너끈히 소화했다. “김향기를 처음 보고 어쩜 저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연기하지 그랬는데 연기의 성숙함이 위로가 됐다. 저보다 더 성숙하고 진득한 표현력이 있어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영화는 아영 주변의 보호종료아동들을 여럿 배치하고, 출산·양육에서 여성들의 말 못할 고충도 섬세하게 그렸다. 아동학과 수업 형식으로 양육의 주의점, 정상가족의 질문도 툭툭 던진다. 남성의 연출이라고 믿기지 않게 섬세한 구성이다. 김현탁 감독은 재개발 동네에서 갈 곳을 잃은 19세 가출청소의 삶을 조명한 ‘동구 밖’으로 2018년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한국경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 영화를 “자립”에 관한 영화로 소개하면서 제목의 ‘아이’ 역시 영어로 ‘I’ 즉 주체라는 의미도 된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일어서겠다는 인물이 누군가에게 손길을 내밀면서 비로소 엉거주춤이라도 세상 속으로 걸어가게 만들고 싶었다”는 설명. 류현경은 “감독님 모친이 의상실을 했는데 거기에 온 직업여성들 기억을 살렸다더라”면서 “편견 없이 사람을 보는 시각이 대본에 드러났고 배우들과 호흡도 그런 식이라 촬영장 분위기도 좋았다”고 돌아봤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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