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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도 아는데 인간이 몰라…고통·간절함 느껴야 아이도 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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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다들 고민이다.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해야 하나.”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기준선 삼는다. 거기에 맞추라고 자식에게 요구한다. 그게 ‘정답’으로 보이고, 그게 ‘전부’로 보여서다. 그런데 그게 정말 정답일까.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교육법 #“새끼 못한다고 대신 해주지 않아 #짜증 대신 인내심으로 함께할 뿐 #아이 방황 땐 사육 말고 방목해야”

기성세대는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 주어진 정답에 익숙하다. 그런데 젊은 세대, 혹은 어린 세대는 다르다. 그들은 자신의 답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세대다. 여기서 간격이 생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식 교육’에 대해 남다른 혜안을 제시한 석학 중 한 명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에게 물었다. 크게 보면 두 가지다.“자식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뭔가?” “그걸 어떤 식으로 실생활에 적용하면 될까?”

최재천 교수는 자식 교육에서 “아름다운 방황과 따뜻한 방목”을 강조한다. 학생들에게도 “아주 열심히 방황하라”고 주문한다. 그걸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으라는 뜻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재천 교수는 자식 교육에서 “아름다운 방황과 따뜻한 방목”을 강조한다. 학생들에게도 “아주 열심히 방황하라”고 주문한다. 그걸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으라는 뜻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풍경1=최 교수는 진화생물학자다. 그는 평생 동물과 식물의 삶을 관찰하고 연구하며 살아왔다. 다시 말해 거대한 자연을 연구하며 살아온 셈이다. 인간도 사실 자연의 일부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최 교수는 생물학자답게 ‘새’를 예로 들었다. 그는 “새가 나는 걸 가르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어떻게 가르치나.
“어미 새는 ‘이렇게 날아라’ 혹은 ‘저렇게 날아라’하면서 새끼 새에게 간섭하지 않는다. 그냥 어미 새가 여기서 저기로 ‘후루룩’하고 날아간다. 그걸 보고서 새끼도 따라 한다.”
처음부터 새끼가 날 수 있을까. 나무에서 떨어지는 새끼도 있지 않을까.
“물론 있다. 그럼 나무 위로 다시 올라가 공중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거다. 서부 아프리카의 침팬지도 마찬가지다. 견과류를 깨 먹을 때 어미는 돌로 쳐서 깨 먹는 걸 새끼에게 보여준다.”
그럼 새끼 침팬지는 어떻게 하나.
“새끼도 아무 돌이나 주워서 따라 한다. 물론 처음부터 잘 되진 않는다. 견과류를 올리는 받침돌도 처음에는 평평하지 않은 걸 고른다. 그래서 열매가 자꾸 굴러서 떨어진다. 어미는 새끼가 제대로 못 한다고 절대로 짜증을 내지 않는다. 대신 깨주지도 않는다. 대신 무한한 인내심으로 새끼와 함께할 뿐이다.”

◆풍경2=최 교수는 자식 교육에서 필요한 게 “아름다운 방황과 따뜻한 방목”이라고 했다. 부모는 대부분 “방황=고통”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의 삶에서 그걸 없애주려고 애를 쓴다. 최 교수의 답은 달랐다.

자식이 방황하는 걸 좋아하는 부모가 있을까.  
“학생들에게 특강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방황하라’고 말한다. 그냥 방황하지 말고, 아주 열심히 방황하라고 한다. 그걸 통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으라고 말한다.”
부모는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아이들이 방황할 때 못 하게 하면 곤란하다. 아이가 스스로 방황할 수 있도록 풀어줘야 한다. 나는 그걸 ‘방목’이라고 부른다.”
방목을 하다가 아이가 절벽으로 떨어지면 어떡하나.
“그래서 방목을 하되, 따듯한 방목이 필요하다. 무작정 하는 방목이 아니다.”
‘따뜻한 방목’이 뭔가.
“비유하자면 조금 넉넉한 길이의 개 줄이 필요하다. 아이를 꽉 붙들어 매지 말고 넉넉하게 매 놓았다가 행여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줄을 당겨야 한다. 관심을 갖되 안 보는 척하며 곁눈질로 항상 주시하라는 거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개 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수갑을 채워서 다니지 않나. 그건 방목이 아니라 사육이다.”
사육을 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자식 농사를 사업에 비유해 보자. 자식을 낳고 키워서 ‘제품’을 만들어 사회에 내보내는 거라고 하자. 그런데 사육을 하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잘해도 남들과 비슷한 놈밖에 못 만든다. ‘기가 막힌 제품’을 만들고 싶다면 방목해야 한다. 닭도 풀어 키운 놈이 쫄깃하고, 배도 벌레 좀 먹어도 밖에서 자란 게 기막히게 달다.”

◆풍경3=역시 관건은 ‘고통’이다. 자식이 겪게 될 방황, 다시 말해 자식이 감당할 고통을 과연 부모가 지켜볼 수 있을까. ‘고통’이 무엇인지, ‘고통’이 자식 교육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 부모가 자식이 ‘고통’을 맛보는 걸 싫어한다.
“가령 뜨거운 주전자를 만졌다가 손을 데었다. 그럼 다시 안 만지게 된다. 만약 이때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면 어떻게 될까. 손을 난로 위나 장작불 속에도 집어넣는다. 결국 다 타 버린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고통은 지구상의 생명체에게 꼭 필요한 거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는 고통, 어떤 건가.
“지구가 생겨난 이후 자연환경은 끊임없이 변해 왔다. 빙하기가 올 수도 있고, 거대한 화산 폭발로 지각 변동이 생길 수도 있다. 그때마다 생명체는 고통을 느낀다. 이런 고통 속에서 간절함이 생겨난다.”
어떤 간절함인가.
“살아남기 위한 간절함이다. 가령 강물에는 먹이가 없고, 육지에만 먹이가 있다. 그럼 물고기에게는 땅으로 올라가 먹이를 먹으려는 간절함이 생긴다. 그런 간절함이 결국 진화의 방향을 설정하지 않았을까.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땅 위를 걸을 수 있는 앞발로 변하게끔 말이다.”

◆풍경4=결국 고통은 간절함을 낳고, 간절함은 우리를 진화하게 한다. 자식 교육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부모가 아이가 겪게 될 한두 번의 고통이 두려워서, 그걸 사전에 차단하면 어떻게 될까. 결국 ‘아이의 진화’를 막게 되지 않을까.

마당에 풀어 키운 닭이 더 건강하다. 나무에서 떨어져 본 새끼가 가장 먼저 날게 된다. 우리만 모르는 걸까. 아이가 겪을 시행착오와 고통이 ‘독’이 아니라 ‘약’이라는 걸 말이다. 최 교수는 “아름다운 방황과 따뜻한 방목”을 거듭 당부했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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