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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권분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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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기헌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삼권분립은 근대가 현대에 안긴 발명품이다. 권력분립은 영국 정치사상가 존 로크(1632~1704)에서 시작했다. 그는 입법과 행정을 분리하는 이권분립을 주장했다. 로크는 『통치론』에서 “공공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은 공개된 법률에 따라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며 법의지배를 설파했다.

이를 발전시킨 게 프랑스 철학자 샤를-루이 드 스콩다 몽테스키외(1689~1755)다. 몽테스키외는 로크의 이권분립을 삼권분립으로 확장한다. 그는 『법의 정신』 등에서 “사법이 입법과 행정에서 독립되지 않으면 진정한 자유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귀족 가문 출신인 몽테스키외는 고등법원장으로 일하면서 법철학 연구에 매진했고 삼권분립을 이론적으로 완성했다. 그의 사회적 배경이 사법부 독립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철학이 현실이 된 건 1787년 탄생한 미국 연방헌법이 처음이다. 미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제임스 매디슨은 “정쟁에 휘말리지 않는 독립적인 판사에게 헌법 해석을 맡겨야 한다”고 봤다. 이렇게 따지면 삼권분립의 역사는 불과 이백년 정도다. 한국식 삼권분립의 역사는 이보다 짧다. 1987년 9차 개헌이 시작점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언행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핵심은 김 대법원장의 삼권분립 훼손과 대법원의 실기(失期)다. 국회 탄핵 전에 문제가 됐던 법관을 사법부가 자신의 힘으로 정리했다면 결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견책이란 경징계로 면죄부를 준 게 바로 김 대법원장이다. 자신의 두 발로 홀로서지 못한 권력은 다른 권력을 감시하거나 견제할 수 없다. 삼권분립의 철학적 배경이 분리(分離)가 아닌 분립(分立)에 있는 이유다.

연유가 어찌 됐던 김 대법원장은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됐다. 세 가지 권력 중 유일한 비선출직인 사법부의 힘은 국민의 신뢰에서 나오지만, 판결이 아닌 정치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이를 상실한다. 헌법이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는 이유다. 삼권분립 훼손을 두고 논쟁이 한창이지만 분립의 원리에 비춰보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분립하지 못한 김 대법원장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제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이를 유지하고 완성으로 이끄는 건 결국 사람이다. 한국식 삼권분립은 아직 미완성이다.

강기헌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