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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받던 중·러 백신의 반전…물량부족 EU "과소평가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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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수도 베를린의 한 아이스링크장을 개조해 마련한 대규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센터 안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독일 수도 베를린의 한 아이스링크장을 개조해 마련한 대규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센터 안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유럽이 백신부족 상황에 직면하자 그동안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러시아와 중국 백신을 선택지로 놓고 곧 도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8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임상3상이 끝나기도 전에 세계 최초로 ‘스푸트니크 V'라는 코로나19 백신 사용을 허가하자 전 세계는 이를 비웃었다. 그러나 불과 6개월 만에 러시아 백신은 인류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도 “유럽연합(EU)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부진하면서 러시아와 중국이 이를 만회해줄 태세를 갖추고 있다”라고 전했다.

EU 회원국들은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전체 인구 대비 1회차 이상 백신을 접종받은 인구 비율은 프랑스 2.7%, 독일 2.6%, 이탈리아 2.3% 등이다. 올해 EU와 결별한 영국(16.4%)이나 아직 EU에 가입하지 않은 세르비아(7.3%) 등 비회원국에 비해 EU 회원국 접종률이 낮다.

영국은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옥스퍼드대-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세르비아는 EU가 아직 사용승인을 내리지 않은 러시아 ‘스푸트니크 V’와 중국 시노팜(중국의약그룹)의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EU 회원국 백신 접종률이 낮은 이유는 물량부족 때문이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에 따르면 EU/EEA(유럽경제지역) 회원국에 현재까지 배분된 백신은 약 1287만7000회분이다. EU가 각 제약사에서 선구매한 백신량이 14억500만회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적은 양이다.

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4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백신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점을 과소평가했다며 ‘실수’라고 인정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업계에서는 백신접종 시작이 백신이 아주 원활하게 공급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라면서 “이는 우리가 과소평가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신 부족에 접종속도가 나지 않으면서 유럽에선 러시아와 중국 백신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러시아와 중국 (백신) 제조사들이 모든 자료를 제출해 투명성을 보이면 다른 백신처럼 (유럽의약품청으로부터) 조건부 판매 승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일 독일 ARD방송과 인터뷰에서 중국산 백신을 사용하는 세르비아의 접종속도가 빠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유럽의약품(EMA) 승인을 받은 백신이면 항상 환영해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러시아산 백신에 대한 좋은 자료를 접했다”면서 푸틴 대통령과 스푸트니크 V에 대해 대화한 사실도 공개했다.

최근에는 러시아가 독일 생명공학기업에 스푸트니크 V 공동생산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반면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 백신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4일 미국 싱크탱크 애틀린택카운슬 토론회에서 중국 시노팜과 시노백이 백신 임상시험 결과를 공유하지 않아 효능을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스푸트니크 V는 임상시험 결과가 국제의학학술지 랜싯에 게재돼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러시아가 제차 개발한 ‘스푸트니크 V’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러시아는 무료 접종이다. [AFP=연합뉴스]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러시아가 제차 개발한 ‘스푸트니크 V’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러시아는 무료 접종이다. [AFP=연합뉴스]

랜싯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스푸트니크 V는 2만명이 참여한 3상 시험에서 예방효과가 91.6%로 나타났다. 특히 화이자 백신과 달리 스푸트니크 V 백신은 냉동고가 아닌 냉장고에 보관할 수 있어 열악하고 더운 나라에서 쉽게 운송·배포 할 수 있다. 또 1회 접종에 10달러에 불과해 서방의 백신보다 훨씬 저렴하다. 물론 아스트라 제네카 백신(4달러)보다는 비싸지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보다 효능(70% 내외)이 훨씬 더 좋다.

시노팜은 작년 말 중국 당국으로부터 출시를 조건부로 승인받았고 시노백은 이날 같은 승인을 받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앞서 토론회에서 중국이 백신을 개발해 세계로 수출하는 것이 “명백한 외교적 성공”이라면서 서방국가엔 “조금 굴욕적인 일”이라고 했다.

WP는 “러시아는 백신외교가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고히 하려는 푸틴 대통령의 광범위한 노력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거의 숨기지 않았다”라면서 냉전 때 소련과 미국 간 우주경쟁의 도화선이 됐던 위성의 이름을 백신에 가져다 붙인 것을 대표적인 예로 봤다.

신문은 “러시아 야권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수감에 독일이 러시아에 강경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이 높아진 상황에서 스푸트니크 V의 유럽 도입 전망이 나왔다”라고 덧붙였다.

조애너 호사 유럽외교협회(ECFR) 부국장은 “현재 EU의 우선 목표는 사람들이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라면서 “EU는 러시아 백신 도입 시 부정적 면에는 눈 감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재성 기자 hono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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