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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 울리는 신라면" 이 카피 만든 '라면의 辛' 물러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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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의 창업주 신춘호 회장. [사진 농심]

농심의 창업주 신춘호 회장. [사진 농심]

농심의 창업주 신춘호(89)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난다. 장남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될 예정이다.

5일 농심에 따르면 농심은 다음 달 25일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서 신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하지 않았다. 이영진 부사장을 신규 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올렸다. 신 회장의 임기는 다음 달 16일까지다. 이로써 1965년 창업 이후 56년간 지켜왔던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신 회장은 92년 회장에 선임된 이후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지금까지도 거의 매일 회사에 출근해 그룹의 굵직한 사업 방향이나 전략 등 핵심 사안을 챙기고는 있지만, 사실상 경영에는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는 게 농심 측 설명이다.

신라면, 짜파게티, 새우깡…이름 직접 지었다

신 회장은 사업에 남달리 적극적이었다. 그가 직접 지었다는 제품 이름이나 광고 카피가 적지 않다. 자신의 성(姓)인 매울 신(辛)자를 따서 만든 신라면이 대표적이다. 스파게티처럼 짜장 소스를 비벼 먹는다는 의미로 만든 ‘짜파게티’(짜장+스파게티)와 새우깡 등의 이름도 그의 대표작이다.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등 광고 카피도 그가 직접 지었다고 한다.

농심은 너구리(82년)를 시작으로 안성탕면(83년), 짜파게티(84년), 신라면(86년)까지 내놓는 라면마다 인기를 끌었다. 단숨에 라면·스낵 업계 1위에 올라섰다. 신 회장도 99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소고기라면, 인스턴트 짜장면, 너구리, 안성탕면, 신라면 등이 고비 때마다 히트해 현재의 농심을 일구는 밑거름이 됐다”고 회고했다.

신춘호 농심 회장이 직접 이름을 지은 신라면. [사진 농심]

신춘호 농심 회장이 직접 이름을 지은 신라면. [사진 농심]

경영 스타일로는 대표적인 은둔형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을 맡았지만 뚜렷한 대외 활동이 없었다. 기업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당시에도 인터뷰는 한 번도 하지 않고, 사진도 거의 찍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농심그룹 신년사도 창립 50주년이 돼서야 직접 연설했다. 그때도 사진은 남기지 않았다.

그는 자서전에서 기업 경영과 관련해서는 “나는 회사에서 발행하는 수표에 내 손으로 도장 한 번 찍어본 적이 없다” 며 “아래 사람에게 믿고 맡기니까 더 잘하더라”고 적었다.

형 신격호와 결별…끝내 화해 못 해

신 회장은 롯데그룹 창업주 고(故) 신격호(1922~2020) 총괄회장의 둘째 동생이다. 원래는 롯데그룹 계열사에서 형을 도와 함께 일했지만, 신 총괄회장이 격렬하게 반대했던 라면 사업을 밀어붙이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65년 롯데공업을 설립해 ‘롯데라면’을 팔다가 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고 롯데와 완전히 결별했다. 신 총괄회장이 “감히 롯데라는 사명을 쓰냐”며 동생이 롯데 브랜드를 쓰는 일에 반대해서다.

신 회장은 자서전에서 이같이 형과의 일화를 회고하며 “숱한 어려움 속에 라면과 스낵 분야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만 롯데는 마트의 자체 브랜드(PB) 상품으로 ‘롯데라면’을 내놓은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라면 시장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이들 형제는 신 총괄회장이 별세할 때까지 끝내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 대신 지난해 신 총괄회장의 빈소에는 신 회장의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이 자리를 지켰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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