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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다를 뿐…기술 만능 벗어나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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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호 20면

사이보그가 되다

사이보그가 되다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사계절

첨단 보조 기계 역효과 잦아 #다양성 긍정하는 사회로 가야 #수어·문자 통역, 휠체어 경사로 #실질적 삶 개선책이 더 시급

사이보그(cyborg)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블록버스터 속 영웅들이다. 형사 로보캅, 윈터 솔져 같은 사이보그 캐릭터들은 기계로 몸을 대체하고 초인간적인 존재로 거듭나 매끈한 팔다리를 휘두르며 스크린 속을 날아다닌다.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유기체(organism)의 합성어인 사이보그는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다는 의미에서 장애인과 관계있다고도 할 수 있다. 보청기나 휠체어, 인공으로 만든 심장이나 제세동기, 고관절, 와우 같은 보조용구공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장애인과 사이보그의 연관성은 뚜렷해진다. 하지만 정작 장애인 당사자들이 자신을 사이보그로 여기거나 그렇게 비유하는 일은 드물다.

『사이보그가 되다』는 장애를 가진 두 작가가 몸과 테크놀로지 그리고 사회의 관계를 공동으로 탐색한 결과물을 실은 책이다. 청각장애인인 김초엽씨는 과학을 전공한 여성 SF 소설가로, 휠체어를 타는 김원영씨는 작가·배우·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이보그가 되다』는 장애인의 시각에서 잘못된 사회적 인식과 정책들을 조목조목 짚어 낸 수작이다. 진정으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자격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한 명쾌한 해법들을 담았다.

첨단 기술의 최전선으로 여겨지는 사이보그와 현실 속 장애인이 살아가는 환경은 아주 딴판이다. 청각장애인들에게 보청기는 ‘600만 달러의 사나이’나 ‘특수공작원 소머즈’ 같은 드라마 속 주인공이 사용하는 세련된 최첨단 기계가 아니라 단지 감추고 싶은 기계일 뿐이다. 현실의 신체 보조 기계는 습진과 중이염을 악화시키고, 피부를 짓무르게 하고, 온갖 염증을 일으키고, 끊임없이 잔 고장이 나고, 지속적인 관리와 전문가의 점검이 필요하다. 게다가 기계는 값이 비싸고, 기술은 불완전하며 보조기기는 때로 과대광고 되기도 하는 일종의 상품이다.

로봇 보조기구를 활용하는 사이배슬론 대회에 참가한 장애인들. 첨단 기술은 장애인에게는 감추고 싶은 기계일 수 있다. [중앙포토]

로봇 보조기구를 활용하는 사이배슬론 대회에 참가한 장애인들. 첨단 기술은 장애인에게는 감추고 싶은 기계일 수 있다. [중앙포토]

청각장애인들에겐 먼 미래에 도래할 완벽한 보청기나 청력 치료제에 대한 약속보다는 의료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말소리를 이해할 수 있는 정보로 전환해 주는 과정이 당장에 더 필요하다. 치료와 회복만이 유일한 길처럼 제시될 때 장애인들의 더 나은 삶은 끝없이 미래로 유예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보도블록을 제대로 정비하고 키오스크에 음성 안내를 포함하는 것은 지금 바로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장애인을 위한 수어·문자 통역, 휠체어 경사로 설치 확대 등 실질적으로 장애인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많은 선택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천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현실에서 기계와 결합한 존재란 아이언 맨 슈트를 입고 하늘을 날거나 온갖 화려한 차종으로 변신하는 모빌리티를 타는 존재가 아니다. 낡은 철제 수동 휠체어를 탄 이들, 오래된 전동 휠체어를 타고 배터리가 방전될까 걱정하는 이들, 3일에 한 번씩 신장 투석기에 접속하고 4시간씩 혈액의 노폐물을 걸러주느라 스케줄 조정에 곤란을 겪는 이들이다. 더 안전하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기계들과 공존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과학과 기술을 통해 장애를 종식시키고 정상성을 되돌려주겠다는 이른바 ‘트랜스휴머니즘’은 기술에 대한 낙관과 긍정이 하나의 사상이자 운동으로 발전한 경우다. 하지만 장애인들을 결코 기술낙관주의의 홍보대사로 동원해선 안 된다. 미래의 트랜스휴머니즘은커녕 2021년의 사이보그 기술조차도 장애인들에게는 결코 가까운 현실이 아니다.

이 책은 장애인이 주체가 되는 삶의 양식을 보여 주고 관련 정책의 획기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장애인은 결코 어딘가 비정상이고 결여된 존재가 아니다. 단지 비장애인과는 다름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지은이들은 장애를 무리하게 치료하고 극복하려는 태도에서 자유로워지고 나아가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수용하고 몸과 정신의 다양성을 긍정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손상을 장애로 만드는 사회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휠체어를 탔고 그 점에서 당신과 같지 않지만 우리는 동등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기는 아직 험난하기만 하다. 이제 사회가, 정부가 그리고 우리가 모두 장애인들의 외침에 진짜로 귀를 기울이고 행동에 나설 때가 왔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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