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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떠난 지 20년…장학생 998명 내 자식 같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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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다 사망한 이수현씨의 어머니 신윤찬씨. 송봉근 기자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다 사망한 이수현씨의 어머니 신윤찬씨. 송봉근 기자

2001년 1월 26일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생을 마감한 유학생 고(故) 이수현씨. 세상은 ‘숭고한 죽음’이라고 했지만, 자식을 앞세운 부모에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올해 아들의 20주기를 앞둔 이수현씨의 어머니 신윤찬(72)씨를 20일 화상으로 만났다.

‘이수현 20주기’ 어머니 신윤찬씨 #위로금으로 재단 세워 유학생 지원 #“뗄 수 없는 양국 관계 회복되길”

매년 1월 26일이면 사고 현장에서 이씨의 추모식이 열렸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규모가 축소됐고, 신씨도 일본에 가지 못했다. 신씨는 “지난 20년간 잊지 않고 아들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담아 동영상으로 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신씨는 “한국과 일본은 사회·경제·문화적으로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양국의 관계가 회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씨는 2년 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남편에 이어, 아들의 이름을 딴 ‘LSH 아시아 장학회’ 명예회장이 됐다. 아들의 의로운 죽음이 알려진 뒤 전국에서 위로금이 답지했다. 부부는 모금액 1000만 엔(약 1억원)을 바탕으로 일본에 유학 온 아시아 학생들을 지원하는 장학재단을 세웠다. 한국과 일본에서 후원이 계속됐고 매년 50명씩, 지금까지 998명이 장학금을 받았다.

장학금 받은 학생이 1000명 돼간다.
“수현이처럼 일본의 비싼 물가를 감당하며 공부하는 아이들이다. 수여식에 가서 보듬어 안아주면 내 자식 같은 마음이 든다. 어려워도 꿈을 잃지 말고 용기를 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학생들을 보면 아들 생각이 나지 않나.
“사고 난 뒤 얼마 동안은 밖을 잘 못 다녔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 군인까지 다 수현이 모습으로 겹쳐 보여서 땅바닥만 보고 다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수현이가 높은 곳에서 이곳을 걱정하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힘들어하면 하늘에서 아들이 ‘엄마 힘들어?’ 하는 것 같아 씩씩하고 쾌활하게 살려고 한다. 불쌍하거나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 않아야 하니까.”

추모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부산한일문화교류협회는 이씨의 일대기를 담은 평전 『이수현, 1월의 햇살』을 곧 출간한다. 이씨가 유학을 떠나기 전 밴드 활동을 함께한 장현정씨가 집필한다. 주일한국대사관도 오는 26일 유튜브에 추모 영상을 올릴 계획이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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