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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9시에야 오는줄 알고…” 뒤늦게 내보낸 제설차도 갇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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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한파 특보에 대설까지 예보됐으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는데 왜 제설작업조차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폭설이 내렸지만) 오후 6시 이후 제설 차량은 단 1대밖에 보지 못했다”

“공무원 역대급으로 뽑았는데 눈 치우는 사람 없어”

서울 전역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6일 오후 서울 관악구 호암로 인근 도로가 강설로 인해 결빙돼 차들이 멈춰서 있다. [뉴스1]

서울 전역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6일 오후 서울 관악구 호암로 인근 도로가 강설로 인해 결빙돼 차들이 멈춰서 있다. [뉴스1]

서울시의 ‘폭설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6일 퇴근길 내린 폭설로 서울 시내 곳곳에서 ‘교통대란’이 발생했고, 7일 출근길에서도 지하철이 멈춰서는 등 출근대란이 빚어져서다. 기상청이 하루 전인 5일 이미 눈이 내릴 것을 예보했고, 지난 6일 오전부터 한파경보를 내렸음에도 서울시가 정작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쌓인 눈으로 경사면에서 차량이 미끄러지는 등 사고도 빈발했다.

지난 6일 오후 9시, 강남구 논현동의 한 도로에서는 승용차가 멈춰 서있던 시내버스를 추돌했다. 눈길에 차가 미끄러지면서 발생한 사고다. 이날 영동대교 북단에서 선릉역 인근까지 승객을 태운 택시기사 김 모씨는 “5㎞ 남짓 이동하는 데 무려 1시간이 걸렸다”며 “차선이 안 보이는 데다 길이 뚫릴 기미가 안 보여 결국 중간에 승객을 내려야 했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불만이 속출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이렇게 폭설이 내린다면 사전 경찰통제와 제설작업이 이뤄졌어야 했는데 거리엔 이들을 볼 수 없었다”며 “운전자는 정체와 미끄러움에 어쩔 줄 몰랐다. 기습 폭설에 시민들은 골탕을 먹었다”고 말했다. 다른 이용자는 “공무원을 역대급으로 많이 뽑았는데 왜 눈 치우는 공무원은 없느냐”고 썼다.

제설차 갇히고 사전 제설도 미흡…기상청, “오전 예비특보 발령”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겨울철 제설대책 추진계획' 중 '효율적 제설을 위한 초동대응' 매뉴얼. 강설량이 1~3cm여도 출퇴근 시간엔 위험도 3단계를 적용, 전 노선에 제설제를 사전 살포해야 한다. [서울시]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겨울철 제설대책 추진계획' 중 '효율적 제설을 위한 초동대응' 매뉴얼. 강설량이 1~3cm여도 출퇴근 시간엔 위험도 3단계를 적용, 전 노선에 제설제를 사전 살포해야 한다. [서울시]

서울시는 “미리 대비했지만 예상치 못한 폭설에 제설작업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당초 기상청이 예보한 강설 시각은 저녁 9시 이후였고 예상 적설량도 1~4㎝여서 오후 4시부터 제설대책 1단계를 적용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영동대로, 테헤란로 등 주요 도로 관할인 강남구청 관계자도 “전 직원의 4분의 1이 비상 근무하고, 제설용역과 제설제를 상차하는 등 제설작업 준비를 했다”고 설명했다.

폭설이 시작되자 대비는 무용지물이었다. 최연우 서울시 도로관리팀장은 “퇴근 시간과 폭설이 겹치다 보니 차량 정체로 준비된 제설차량도 정체를 피해 가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폭설을 대비한다고는 했지만 정작 퇴근시간대에 정체가 빚어질 것을 예상 못했다는 의미다. 매뉴얼도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작성한 ‘겨울철 제설대책 추진계획’에 따르면 출퇴근 시간(오후 6시~9시)엔 적설량이 1~3㎝로 적어도 위험도 1~3단계 중 가장 높은 3단계가 적용된다.

3단계의 경우 염화칼슘 등 제설제를 서울 내 전 노선에 살포하게 돼 있다. 그러나 서울시 관계자는 “오후 9시 이후 눈이 올 것으로 보고 오후 5시부터 사전 살포 작업에 들어갔으나 도로 정체로 사전 제설을 끝내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며 “다만 사전 살포를 했더라도 적설량이 5㎝ 이상이면 눈이 쌓일 수밖에 없다. 지난 6일엔 시간당 7㎝까지 눈이 왔다”고 설명했다.

CCTV 780개로 현장 볼 수 있는데…“기상청 예보 있어야”

 6일 오전 서울시청 안전통합상황실 모니터에는 서울 전역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져 한파비상대책이 가동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오전 서울시청 안전통합상황실 모니터에는 서울 전역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져 한파비상대책이 가동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가 모니터 21대로 서울 도로 곳곳에 설치한 CCTV 780여개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상황실을 갖추고도 매뉴얼을 현장에 맞게 적용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는 “기상청 예보를 기준으로 제설대책 단계를 판단하는데, 이날 예보는 오후 9시 이후 적설량 5㎝ 미만이라 1단계(주의)를 적용했다”고 해명했다. 서울시는 이어 “기상청이 오후 7시를 기해 대설주의보를 발령한 것을 본 후 7시 20분에 2단계(경계·적설량 5~9㎝)를 발령, 전 직원의 2분의 1이 비상근무에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날 안전총괄실장 주재로 열린 상황판단회의는 폭설이 시작된 이후인 오후 6시 40분경 열린 것으로 확인됐다. 1단계→2단계 상향까지 40분이 걸린 셈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재난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고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에,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당시 상황에 맞춰 즉각적으로 대응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내 집 앞 눈 치우기, 도로결빙 유의 등 내용을 담은 안전 안내문자도 2단계가 발령된 지 한 시간여가 지난 오후 8시 28분에야 발송됐다. 서울시가 지난해 1월 보도자료를 내고 홍보한 ‘지능형 액상 살포장치(눈 또는 얼음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물로 된 제설제가 살포되는 장치)’도 폭설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오전엔 전철도 멈춰…기상청은 서울시 해명 반박

2019년 12월 18일 오전 지하철 1호선 종각역의 열차 지연 모습. [연합뉴스]

2019년 12월 18일 오전 지하철 1호선 종각역의 열차 지연 모습. [연합뉴스]

7일 오전엔 코레일 전철 1호선(소요산행)과 4호선(당고개행) 전철이 각각 외대앞역과 길음역에서 멈춰서는 사고도 발생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열차가 멈춘 곳은 터널 구간이어서 폭설, 한파 등 요인이 영향을 미친 것 같지는 않다”며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기상청은 이날 오후 “기상청 예보보다 눈이 빨리 왔다”는 서울시 해명에 대해 반박했다. 기상청은 “서울시 해명은 사실이 아니다”며 “이미 6일 오전 11시10분에 대설 예비특보를 발령하고 오후 6시경 눈 예보도 했다. 관련 자료도 곧 배포할 것”이라고 밝혔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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