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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의회 점거 쇼크···트럼프, 바이든에 '광란의 무리' 안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6일(현지시간) 의회를 습격한 트럼프 지지자들. [UPI=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의회를 습격한 트럼프 지지자들. [UPI=연합뉴스]

‘광란의 무리가 미국 민주주의의 성채를 휩쓸었다.’

뉴욕타임스(NYT)는 6일(현지시간) 초유의 워싱턴DC 의사당 점거 사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이날 마이크 펜스 부통령 주재로 미 대선 선거인단 투표를 확정짓는 상ㆍ하원 합동회의가 열렸지만, 대선 결과를 거부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 수백명이 미 의회를 습격하며 의원들이 도망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AP통신과 CNN에 따르면 이번 소요 사태로 4명이 숨졌다. 의회 합동회의는 주방위군이 투입되고 통행금지령이 내려진 뒤에야 속개됐다.

①숙제 떠안은 바이든=이번 사태로 떠나는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에게 '광란의 무리'를 남겼다. 퇴임 마지막까지 그냥 물러나지 않은 것이다. NYT는 이번 사태로 인해 “트럼프 시대는 폭력으로 종말을 맞았다”고 평가했지만, 트럼피즘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분열된 미국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이 바이든 정부의 최대 과제가 됐다.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해 11월 승리연설에서 “미국이 치유를 해야할 시간”이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젠 미국의 치유에 앞서 미국의 절단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정권 출범도 하기 전에 국론 통합이라는 숙제를 떠안은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 “이번 사태는 폭거”라면서도 “이번 일이 미국을 말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 오는 20일 바이든의 취임식에서 소요 사태가 다시 일어날 우려도 있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미국센터장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기성세대와 친(親) 트럼프 진영으로 분열된 점 등은 트럼피즘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말해준다”며 “취임 첫해 바이든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시 다수당을 내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6일(현지시간) 기자회견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 [로이터=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기자회견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 [로이터=연합뉴스]

②전통이 무너졌다=이번 사태가 바이든 당선인에게 심각한 이유는 극렬 트럼프 지지자들의 일회성 일탈 행위로만 치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미국 정치의 전통적인 관례들이 상당수 허물어졌다. 특히 선거부정 음모론은 이미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 '대선에 사용된 도미니언 투표 시스템은 트럼프 표를 삭제했다', '애리조나주에서 20만표가 바이든 표로 둔갑했다' '애틀랜타에선 투표용지가 가방에서 빼내 졌다' 등 각종 대선 유언비어가 트럼프 지지층 사이에 돌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6일 팩트체크로 거짓임을 알린 대표적인 유언비어들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충성층은 부정 투표, 개표 조작 주장에 마음을 달래며 바이든 정부를 거부하고 있어 문제다.
 그간 미국의 전통은 대선 승복이었다. 2000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에게 패했던 앨 고어의 승복이 대표적이다. 당시 플로리다주에서 박빙으로 패했던 고어는 재검표를 요구했다가 연방대법원이 재검표 중단을 결정하자 이를 수용했다. 최종 승복 연설에서 "다시는 전화하지 않겠다"는 농담으로 대선 승복을 명확히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공식 확정 당일까지 지지자들을 부추기며 이같은 전통을 무너뜨렸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는 온전히 바이든 당선인의 몫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를 불과 2주 남겨놓고 미 정부가 아노미 사태로 빠질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또는 수정헌법 25조 발동이 거론되면서다. 혼란한 정치 상황 역시 결국 바이든 당선인이 떠안을 몫이다.

6일(현지시간) 백악관 앞에서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백악관 앞에서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③ 초유의 점거=전례 없는 습격 사건에 미국은 충격에 휩싸였다. 민주당 코리 부커 상원의원은 “미국 역사상 신성한 시민의 공간이 점거된 건 1812년 영미전쟁 이후 오늘이 두번째”라며 “미국 민주주의의 어두운 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존 애블론 CNN 선임 정치 분석가는 “미국에 대한 트럼프의 대학살이 쿠데타로 끝났다”며 날선 비판을 했다.
시위대를 자극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책임론도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앞에 집결한 시위대 앞에서 “우리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또다시 대선 불복을 시사했다. 트위터엔 지지자들을 “오랫동안 부당하게 대우 받은 위대한 애국자들”로 부르며 “이날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밋 롬니 상원의원은 “오늘 일은 미 대통령이 선동한 반란 사태”라고 지적했다.
NYT에 따르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주방위군 투입을 정부 측에 요청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거부했다고 한다. 병력 투입을 승인한 건 펜스 부통령이었다.
상황이 고조되자 트위터는 트럼프 대통령의 ‘애국자 발언’ 트윗을 삭제하고 계정을 열두 시간 동안 폐쇄했다. 페이스북ㆍ유튜브도 트럼프 대통령의 비디오 연설 영상을 삭제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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